150919 : 리라프랑 : 입헌군주제 찬백 1
입헌군주제 찬백 -1-
: 대통령 찬열 x 대군 백현
- 리라프랑
혀니는 왕실사람이야. 직위는 대군. 왕세자는 따로 있고 왕위계승 서열 2위야. 서열 2위라는 이유로 혀니는 왕비의 미움을 받아. 사실 혀니는 왕의 아들이 아니거든. 혀니는 왕의 형 아들이야. 조카인거지. 왕에게 아들은 하나 인 탓에 늘 기사와 가십거리로 왕세자가 능력이 되느냐 안 되느냐 언급이 돼. 혀니가 대군이 된 이유는 왕이 혀니를 입양했기 때문이야. 형의 부부가 사고로 죽게 되고 8살이 되던 해까지 해외에서 지내던 혀니를 왕이 데리고 와 호적에 입적시켰어. 그러니 자연스레 서열 2위가 된 거지.
왕비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만약 자기 아들이 실수라도 하거나 사람들에게 믿을을 주지 못하면 자연스레 왕세자는 혀니에게 갈 것 같거든. 그래서 혀니를 미워하게 돼. 어린 나이지만 혀니도 어렴풋이 알고 있어. 왕비가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 한단 걸 여리는 총리의 아들이야. 조선시대부터 관직을 지내고 대한민국으로 바뀌면서도 대대로 정치인을 하던 집안. 말 그대로 귀족 중에 귀족인 셈이지. 이런 아이들이 모여 다니는 학교가 있어. 바로 왕실제단의 학교인데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교까지 있는 곳이야.
왕실 혈통이나 여리같은 아이들이 주로 다녀. 돈 꽤나 있다고 하는 기업의 애들도 있고 말 그대로 그들만의 리그. 여리는 당연히 이곳 유치원부터 다니게 되고, 혀니는 아버지가 왕을 포기하면서 외국으로 떠났기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는 않아. 지금 왕이 혀니를 입적시키면서 왕실 학교로 입학을 하게 돼. 나름 왕실의 순수혈통이니 다들 혀니를 어렵게 생각해. 하지만 왕자가 혀니를 좋게 보지 않아. 왕비가 혀니를 데리고 오던 날 밤 저를 꼭 안고 슬픔에 차서 울었거든. 나이가 어려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제 어머니가 혀니를 싫어한다는 거였어. 좋아하면 안 될 아이 같았던 거지. 그래서 왕자가 혀니를 미워해.
입학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혀니가 전학을 오게 된 거라 학교 안이 술렁거려. 고작 8살밖에 안 된 아이들일지라도 나름 안에서 서열이 정해지게 마련인데, 다들 왕자 다음 서열이 혀니가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왕자가 혀니를 거들떠도 보지 않게 되면서 혀니는 서열에 끼이지도 못하게 돼. 그리고 왕자 쪽 서열과는 다르게 여리는 자의로 서열에서 빠진 타입이야. 마이웨이인 거지.
다들 왕자의 눈치를 보며 혀니를 대해. 혀니도 나름 왕자라서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지만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까딱하는 정도. 혀니는 깨닫게 돼. 나는 여기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하는 것을. 여리는 지금 대통령이나 왕도 함부로 안 하는 집안이라 혼자 아싸로 지내려고 해도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 여리 천성은 친절하고 착한데 찬바람이 꽤 부는 편. 그래서 주위 친구들이 왕자와 더불어 여리에게 잘 보이려고 해. 여리는 이게 귀찮아.
어린 나이지만 이미 서열 같은 게 정해져서 대학까지 갈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형이랑 누나가 그렇거든. 저에게 붙어 아부하려는 아이들을 뒤로하고는 혼자만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유치원까지 모두 포함된 곳이라 나름 똑똑한 여리는 혼자 있을 자기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놨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온 여리가 문을 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면 아지트 구석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혀니가 보여. 아이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혀니를 그냥 멀뚱히 보기만 해. 나가라고 할까? 다신 여기로 오지 말라고 할까? 하다가 여긴 왕실 재단이니 자기에게 소유권이 없다는 걸 깨달아. 여리는 천천히 혀니 옆으로 가. 여긴 어떻게 알았어? 여리가 먼저 말을 걸어오면 책을 보던 혀니가 여리를 올려다 봐.
그냥.. 혀니의 대답이야. 눈썹을 올렸다 내린 여리가 먼저 혀니에게 손을 내밀어. 나는 3반 여리야. 그 손을 가만히 보던 혀니가 여리의 손을 맞잡아. 나는 혀니야. 이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이야.
그날 이후로 차니배기는 나름 같이 다녀. 누군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아지트에서 만나고 나란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숙제를 하고 대화는 많이 나누지 않지만 옆에 있는 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 다른 아이가 아지트에 있었다면 기분이 나빴을 텐데, 책을 읽고 있던 혀니를 봤을 때 여리는 방해하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두 사람은 초등학교가 끝나는 날까지 붙어 다녀.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그리고 14살이 되면서 여리는 유학을 가게 돼.
왕실 학교만 나와도 엘리트 코스라서 앞길이 탄탄대로지만 여리는 조금 더 세상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설득에 유학을 가기로 해. 가능하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여리가 출국하는 날 혀니도 공항에 나와. 가지 말라고 울먹울먹 하면서 잡을 줄 알았는데 혀니는 미소 지으면서 여리를 배웅해줘. 도착하면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해야 해, 알았지? 가장 친한 친구가 떠나는데도 씩씩하게 보내줘. 그런 혀니를 보며 여리도 남자답게 잘 갔다 오겠다고 말을 해. 그리고 돌아서서 비행기로 가는 길에서 여리는 울음이 터져. 옆에 동행하는 비서가 손수건을 건네주면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지. 혀니는 나랑 헤어지는 게 아쉽지도 않나봐. 많이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난 너무 슬픈데.. 하면서 훌쩍거려.
그리고 반면 혀니도 울적해. 6년 내내 붙어 다니던 여리가 외국으로 가버리면 정말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나름 씩씩하게 잘 보내주고는 혀니도 돌아서서 훌쩍훌쩍거려. 여리 앞에서 울면 여리가 못 갈걸 아니까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리는 거지. 같이 나온 혀니의 내관이 혀니를 안아주면 그대로 안겨서 폭풍 오열을 해.
안 그래도 말수도 작고 조용하던 혀니는 더 조용하게 지내게 되고, 여리는 외국에서 긴 생활이 사작 되는 거야. 이후로 혀니가 혼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혀니를 까내리는 기사가 하나씩 나오곤 해. 왕비가 제 아들과 비교되는 게 싫어 고의적으로 기삿거리를 흘리는 거야. 왕실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도 없고, 전부 카더라로 떠도는 말이지만 모든 정황이 혀니를 가리켜. 부모를 죽게 했다. 어린애가 왕실에 위협이 된다. 왕이 호적에 입적 시킨 건 실수다. 하는 말들을 말야. 공식적인 기사는 하나도 없고 카더라 아니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니셜기사로만 나와. 그래서 혀니를 실제로 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가 해가 될거라는 생각을 해. 그래도 혀니는 거기에 신경X. 제가 더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공부도 봉사활동도 엄청 열심히 하고 다녀.
왕비는 자기가 기삿거릴 흘려놓고 혀니를 불러. 그리고 여태 나왔던 찌라시들을 혀니 앞에 던지든 내놓아. 대군이 될 거라면 행동거지를 똑바로 하세요. 왕실에 누가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잘 하셔야 할겝니다.
멀뚱히 왕비가 던져놓은 찌라시를 보던 혀니가 왕비와 눈을 맞춰.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가요.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아요. 혀니의 말에 왕비의 표정이 더 굳어. 소홀히 하세요. 조용히 지내란 말입니다. 말도 하지 말고 듣지도 보지도 마세요. 일종의 경고였어. 열심히 해서 서열 2위가 1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자신의 아들에게 위협이 되지 말라는 뜻이었지. 혀니가 왕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없는 듯이 살아드릴게요. 키워주신 은혜도 모르는 잡종은 아니니까요. 한 번에 말을 알아듣는 혀니도 왕비는 못마땅해. 단순히 아들의 자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혀니를 싫어하는 건 아냐. 사실 왕의 첫사랑이 혀니의 모친이라서 여자의 질투인 셈이지. 그렇게 혀니는 왕실의 혈통이지만 존재감 없는 인물로 살게 돼. 방으로 돌아온 혀니는 떠난 여리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도 나중엔 꼭 돌아온다 했으니 나름 씩씩하게 지내려고 해. 그리고 왕비 말처럼 더 조용히 지내.
그래도 혀니는 왕실의 혈통이라 나름 혀니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있는데 그중 어떤 여자애가 혀니에게 고백을 해왔어. 아기자기하게 포장한 작은 선물상자를 혀니에게 건네면서 고백을 하지만 이 순간 혀니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바로 여리인거야. 왜 갑자기 이런 타이밍에 여리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내가 이렇게 여리에게 고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뜬금없이 생각난 여리의 존재에 혀니가 혼자서 당황을 해. 그리고 깨닫게 되는 거야. 아, 내 첫사랑이 여리구나. 나에게 그 아이는 친구가 아니라 더 큰 존재였구나 하는 것을. 그리고 더 깊게 찾아오는 외로움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여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혀니가 자신에게 친구이지만은 않다는 걸. 종종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손편지를 할 때에도 혀니는 가십거리나 이니셜 기사 따위를 여리에게 말하지 않아. 사실 여리는 외국에 있어도 다 봤거든 혀니에 대한 안 좋은 것들을. 그럴 때마다 아이의 옆에 제가 없다는 걸 슬퍼했어.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옆에서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데 지금은 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빨리 시간이 가기를 바라고 있었지. 계획은 대학까지 모두 외국에서 다닐 예정이었지만 정치를 하려면 학연이 중요하다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이 끝나면서 여리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돼. 혀니랑 비슷했던 키는 어느새 훌쩍 커져 180을 한참이나 넘었고 훨씬 더 남자답고 멋있어졌어. 여리는 혀니에게 한국에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아.
가서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거든. 종종 사진을 보내오면 더 고와지는 혀니의 모습을 보면서 여리 혼자서 가슴 떨려 했는데 이젠 실제로 볼 수 있게 되었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또 터진 가십거리를 보고는 여리 기분이 또 좋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가면 누구보다 먼저 혀니를 만나서 그동안 옆에 없었던 설움을 다 날리고자 했어. 먼저 돌아오면 할아버지를 뵈어야 하지만 여리는 곧장 둘만 있던 아지트로 향해.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혀니가 앉아서 처음 만난 날처럼 책을 읽고 있어. 온갖 예쁜 빛은 혼자 다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홀린 듯이 혀니의 곁으로 가서 서면서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 현아, 나왔어. 변성기가 지나 멋있어진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남자다워진 여리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야.
혀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여리를 쳐다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해. 햇빛을 등지고 서있는 여리를 보면서 혀니가 계속 놀라서 있으면 여리가 해사하게 웃어줘. 보고 있기만 할 거야? 나 안 보고 싶었어? 여리의 말에 혀니는 그저 고개만 저어. 여리가 혀니의 앞으로 더 다가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줘. 나도 보고 싶었어. 너무나 많이. 그럼 혀니는 홀린 듯 앞에 서 있는 여리의 허리를 끌어다가 안아버리고 얼굴을 부비적거려.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여리가 돌아온 후로 혀니는 웃음을 되찾아. 당연한 수순으로 두 사람은 왕실 대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고 여리는 어른들을 따라 정치인이 되려고 준비하지. 혀니는 정치를 할 수 없으니 여리와는 다른 공부를 해. 그래도 두 사람은 같이 다니면서 의지하게 되지. 하지만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아. 좋아하는 마음은 같지만 혹시라도 누군가 그걸 알게 된다면 저 뿐만 아니라 여리의 앞길을 막는 거라고 혀니는 생각해. 그리고 여리는 두 사람의 관계에 말하지 않는 혀니를 보면서 섭섭함을 느끼지 않아.
혀니가 처한 상황을 여리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계속 마음에만 담고 혀니 옆에서 위로가 되어줘. 왕은 혀니를 좋아해. 왕비의 짐작처럼 혀니의 엄마를 사랑했고, 형과 결혼해서 떠나기로 한 여자를 보내줬어. 그리고 그의 아들을 마음으로 낳아 키운 거야. 실은 혀니를 데리고 올때 왕은 혀니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어. 사실 왕도 사람인지라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을 질투했지. 하지만 혀니가 친모를 닮아 고운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점점 마음을 열고 친 아들처럼 대해주는 거야. 왕비가 혀니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딱히 음해하려고 했던 증거는 없으니 지켜보는 중이야.
혀니는 여리가 돌아온 후로 더욱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해.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니면서 공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나름 행복한 대학생활을 보내. 여리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엄청 좋은 수준이야. 현재 왕세자보다 더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지. 매너 좋고 잘생기고 똑똑한 여리를 국민들은 모두 좋아했어.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옆에 늘 붙어 다니는 혀니였던 거야. 하지만 혀니가 옆에 있다고 해서 여리가 엉뚱한 행동을 한다거나 말을 하지는 않아서 다들 그러려니 해. 다만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왜 그런 애랑 친한지 모르겠다, 가 주된 이야기거리였지.
여리는 사람들의 인지도가 강해서 졸업을 하자마자 정치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돼. 처음으로 나간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국회의원이 되는 거야. 어린 나이에 여리는 보기드문 아주 바른 청년인거야. 여전히 혀니는 (아무도 모르게) 왕실에서 태클을 당하는 중이고 여리는 승승장구해.
보통 정치적인 색을 제외하고는 왕실 사업이 있어. 왕과 왕비, 왕세자와 공주 모두 각자 왕실 사업을 맡아 하나씩 진행하고 있는데 혀니만 없어. 왕은 혀니에게 작은 사업이라도 맡게 하고 싶지만 그럴 때마다 왕비의 의도적 인듯 의도적이지 않는 방해가 이루어져 번번이 실패하고 말아. 덕분에 왕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왕자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중이야. 여리는 이게 불만이었어. 사람들의 박수는 받지 않더라도 혀니가 왕실의 일원으로 뭔가 했으면 좋겠는데 딱 봐도 누군가의 방해로 혀니는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고 말아. 그동안 여리는 더욱 인지도가 쌓여.
시의원에서 단번에 시장까지 되는 아우토반을 달려! 똑똑하고 잘생기고 개미새끼도 여리를 좋아할 정도야. 여리는 기회를 엿봐. 왕비와 독대를 하고 혀니의 문제를 나긋나긋 말할 수 있는 위치가 되기까지를. 시장이 되었음에도 여리는 함부로 나서지 않아. 왕비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자신은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한 번씩 혀니를 너무나 괴롭히는 날이 있으면 말없이 혀니를 안아주고 토닥여줘. 혀니는 그런 여리가 옆에 있어서 늘 힘을 내고 있어. 굳이 나서달라고 말하지도 않아.
여리는 혀니가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게 살짝 섭섭해. 속상하다고 힘들다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속이 깊어서 그러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원망도 못해. 어릴 때부터 이리저리 치인 혀니가 여리는 안쓰러워. 잠잠히 잘 있던 혀니에 대한 기사가 또 뜨고나서야 여리가 혀니를 또 찾아가서 작은 몸을 끌어안아.
현아, 그냥 나한테 기대주면 안돼? 낮은 열이 목소리가 혀니 귓가에 닿으면 혀니는 말없이 열이를 더 꽉 끌어안아. 그리고 고개를 저어. 여리도 혀니를 더 꽉 안으며 다시 말해. 나한테는 이제 말해줬으면 좋겠어. 너무나 진지한 여리의 말에 혀니가 왠지 울적해져. 드디어 여리가 모른 척 했던 것들이 터지는구나, 혀니는 느껴. 좋아하는 사람한테.. 짐이 되기가 싫어. 여리에게 들릴 듯 들리지 않듯 작게 속삭여줘. 혀니의 말에 여리가 끌어안던 몸을 떼어내고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봐. 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혀니가 먼저 눈을 피하면 제 쪽으로 다시 보게끔 얼굴을 잡고 고정시켜. 다시.. 말해줄래? 여리의 말에 혀니가 물음표를 달고 쳐다봐. 짐이 되기가 싫다는 거? 혀니의 말에 여리가 고개를 가로저어.
아니, 그거 말고. 앞에 했던 말. 그제야 혀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아.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다시 눈을 피하려고 하면 여리가 다시 자신을 보게 해. 내가 말할까? 널 좋아한다고. 여리의 말에 혀니가 멍해진 표정으로 여리를 보기만 해. 자신을 보고 있는 혀니에게 한발 더 다가가 여리가 먼저 키스했어. 떨리는 듯 조심스레 입을 맞춘 여리가 조금 더 진득하게 혀니의 입술을 두드려. 갑작스런 입맞춤에 놀란 혀니가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열어주면 조금 더 깊게 혀니에게 키스를 해.
질기기도 하지. 처음 만나고 20년이 더 지나서야 서로의 마음을 고백해. 서로가 발을 딛고 있는 위치가 너무 무거워서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드디어 터져 나온 거야.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 혀니를 보면 제 옷을 꽉 쥔 하얗게 변해버린 손도 눈에 보이고 더욱 붉어진 입술도 보여. 그리고 알고는 있었지만 더욱 확실해진 혀니의 마음이 보여. 이건 혀니또한 마찬가지였어.
그날 이후로 여리는 차근히 준비를 해. 혀니가 더 이상 왕실 사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조금 더 키우기로 해. 너무나 오래 기다렸던 일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 시장 임기를 마친 여리는 최연소 총리가 되고 말아. 원래는 자신의 힘으로 되길 원했지만 혀니를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던 거야. 먼저 부모님께 자신의 계획을 알려. 사실을 말하면 노발대발 할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의외로 쉽게 여리의 계획을 수긍해줘. 그리고 여리가 총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렇게 여리는 누구라도 저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를 만들어가.
그리고 찾아간 곳이 왕실이야. 혀니에 대한 모든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 왕비야. 왕비의 앞에 앉아 여리는 그동안 왕비가 해왔던 일들을 앞에 던져줘. 이게 뭔지 아십니까?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여리의 말에 왕비가 주춤해. 이런 것을 가지고 온다하여 제가 쉽게 대답을 할 것 같습니까? 왕비의 대답에 여리가 살짝 미소를 지어. 그 대답만으로 충분히 왕비마마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소 안에 숨겨진 눈빛에 왕비가 입을 꾹 다물어. 여리가 여우새끼인주 알았더니 호랑이 새끼였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왕비가 가까스로 평정심을 찾고(찾은척) 여리에게 반박을 해. 가만히 생각을 하던 여리가 다시 왕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대군에게 왕실 사업을 맡겨주실 것. 두 번째, 그 대군을 저에게 주실 것. 이 두 가지만 해주시면 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 제가 없애드리겠습니다. 여리의 말에 왕비가 입술을 깨물어. 솔직히 혀니에게 사사건건 태클을 걸면서도 배후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파장이 생기게 될지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지, 대군을 저에게 달라니. 공주도 아닌 대군을 말이야. 왕비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여리는 계속 미소를 띈 채로 말을 해. 조만간 알게 되실겁니다. 그리고, 저에게 꼭 대군을 주시겠다 말을 하실겁니다. 기다리고 있지요. 그리고 왕비와의 독대는 끝났어.
여리가 주고 간 문서들 안에는 혀니가 어떤 왕실사업을 했으면 한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들어 있지만 혀니를 어떻게 여리에게 줄 지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어. 이상한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왕비는 여리의 말대로 하기로 해. 적어도 혀니가 왕이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평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던 혀니에게 맞는 사업이 하나 있어. 왕실과 연계된 재단 중에서 빈곤층 아동과 노인에게 매달 생계자금과 학비를 지원해주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혀니에게 맡겨달라는 거였어. 왕비는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수용하기로 해. 이 재단을 운영하면서 이미지가 나빠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거든. 하지만 너무나 일을 벌려놔서 이걸 하지 않으면 왕비는 스스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어. 혀니에게 드디어 첫 왕실사업을 맡겨. 여리가 왔다간 줄은 꿈에도 모른 혀니가 갑자기 왕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단 중 하나를 맡긴다고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야. 왕비가 전과는 다르게 혀니에게 나긋나긋 웃으면서 말하기까지 해. 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대군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니까. 얼결에 재단을 맡게 된 혀니가 고개를 끄덕거려.
혀니가 재단을 맡고 생각한 것은 재단이 운영되면서 들어오는 수익금만 매달 지원이 되었는데 특별하게 무언가를 더 해주고 싶은 거야.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은 초중고 골고루 있어서 콘서트같은 걸 하기로 해. 아이들 초대해서 재밌게도 해주고 수익금도 전부 줄 생각이야. 나름 머리를 잘 쓴 탓에 왕도 흡족해하고 사람들이 혀니에 대해서 다시 보게 돼. 그리고 거의 처음으로 혀니에대한 좋은 기사가 나오게 되지. 여리는 그것을 흐뭇하게 봐. 분명 이것을 시작으로 혀니는 더 잘 할 테니까 왠지 뿌듯해.
그리고 그 즈음 여리가 국회에서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해. 그것은 동성결혼 법안이었어. 법안 통과가 안된다는 사람들과 이젠 해야 한다는 사람들 반반 나뉘어 찬성과 반대의 대립이 팽팽해져. 어디서 그런 법안을 가지고 오냐는 나이 지긋한 의원들과 반대로 이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원들이 팽팽히 줄다리기를 해. 막상 법안 내놓은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아. 어떻게든 통과가 될 거니까. 처음엔 비공개로 진행되던 회의가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운 감자가 되고 기사로까지 나와.
그리고 왕비도 이즈음 여리가 통과시키려는 법안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돼. 그리고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지. 대군을 저에게 달라고 했던 것을. 왕비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가 퍼져. 곧 죽었다 깨어나도 혀니는 왕이 될 수 없었던 거야. 왠지 모를 승리감과, 또 알 수 없는 패패감이 공존했어. 왕실의 위엄을 지킴과 동시에 여리의 지지율이 혀니에게도 곧 가게 되는 거야. 왕비는 고민에 빠졌지. 이대로 어디 고만고만한 집에 여자와 결혼을 시킬지, 말 그대로 여리에게 보내줄지 말이야.
하지만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불어 닥칠 후폭풍이 너무나 거셌으니까. 혀니만 보내주면 왕비의 자리와 왕실의 기품은 유지하는 거야. 이번엔 왕비가 여리를 찾아가. 졌다는 듯 왕비가 여리를 보고 말을 해. 대군을 줄 수밖에 없게끔 하셨습니다. 꼭 통과시켜서 데리고 가세요. 이로써 왕비는 여리와 했던 약속을 모두 지키게 돼. 여리는 법안이 통과되면 제일 먼저 혀니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었어.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할 테니 먼저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그 상대가 평생 마음에 품어왔던 혀니가 된다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더 좋은 것이고. 왕비의 승낙이 떨어짐과 동시에 여리는 법안 통과에 박차를 가해. 빨리 혀니를 옆에 두고 싶거든.
찬반이 팽팽했던 법안이 여리의 노력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통과되었어. 이 법안을 발효시킨다고 결혼을 할 것 같냐는 다른 의원들의 말에 여리가 먼저 본보기가 되겠다고 했지. 장내가 술렁거렸어. 누구와 할 거냐고 물어보면 여리는 그저 웃기만 해. 반면 혀니는 아무것도 몰라. 왕실에서 맡긴 사업을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혀니에게 비밀로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왕비는 조용히 혀니와 여리의 결혼을 준비시켜. 왕에게 여리의 뜻도 전하고 여리 집과도 이야기가 끝이 났어. 이젠 혀니에게 알리기만 하면 돼.
두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건 정치적인 협력관계에도 좋은 수단이 될게 뻔해. 왕비는 서열2위 대군이 총리와 결혼하면서 왕이 되지 않을 거라 이득이고, 여리네 집안은 왕실과 사돈이 되니 나쁠 것도 전혀 없어. 다만 이 결혼을 못미더워 하는 사람은 바로 왕이었어. 제 아들 같은 대군을 남자와 결혼시키자니. 친아들이라도 이렇게 말을 할까 싶어. 절대 이 결혼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자신의 호적에 입적 시킨 게 아니야. 여태 혀니를 언론에서 지켜주지 못했지만 여기서 반대하지 않으면 더 심하게 언론에서 까일게 뻔하니 그건 막고 싶은 마음인거야. 그대의 아들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소? 왕이 화를 누르며 왕비에게 말을 해. 대군이 제 배에서 나온 둘째 왕자라도 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왕비의 말에 왕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져. 왕세자가 아닌 대군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그저 좋은 집 여자와 결혼해서 정치적인 발언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살아갈 바에야, 지금 박총리같은 남자와 결혼시키는 게 혀니가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왜 모르냐고 말을 해. 왕비의 말에 왕이 의외라는 듯 쳐다봐. 여태 혀니를 괴롭힌 사람은 왕비였는데 아이의 행복을 운운하니 기도 차고 말야. 왕비가 여리에게 보여준 미소를 띄어. 미운정도 정이더이다. 품에 안아주진 못했지만 그 세월 옆에 있었다고 이제는 제가 좋아하는 곳으로 보내주고 싶은 게요. 좋아한다고 하였습니까? 왕이 왕비를 향해 다시 물어. 내색은 안 해도 두 사람 마음이 맞으니 이렇게 판을 크게 벌리겠지요. 친아들만 품어주는 독한 어미라고 손가락질 당해도 저는 보내줄 겁니다. 단호한 왕비의 말에 왕이 결국은 설득을 당해. 허락이 떨어졌지.
이젠 혀니에게 말하는 일만 남았어. 모든 일이 정리가 될 무렵 혀니도 낌새를 눈치 채고 있었지. 그동안 혀니에 대해 나쁜 기삿거리는 전혀 나오질 않았어. 오히려 혀니가 해왔던 일들을 거론하며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온 것으로 칭찬을 받아.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고, 이제 좋은 일만 남았나 싶어. 그리고 마침 여리가 데이트 신청을 해. 혀니는 대충 눈치를 챘지만 내색하진 않아. 평소보다 머리며 옷이며 조금 더 신경 쓰고 약속장소로 향했어. 여리의 친구가 크게 하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도착한 혀니가 자리를 안내받아 안으로 들어왔어. 레스토랑 가운데 크게 셋팅 되어있는 자리에 앉은 혀니가 주위를 둘러보지만 직원 몇 명을 제외하곤 사람들이 없어. 빌렸구나. 싶은 생각에 웃음이 작게 터져. 재미없는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이런 수가 뻔히 보이는 방법이라니. 그래도 평생 저를 향한 마음 하나는 그대로였어. 테이블 위를 구경하고 있으니 여리가 도착을 해. 혀니가 앉아있는 것을 본 여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앉아있는 혀니를 안아버려.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에 혀니만 어안이 벙벙해서 몸이 굳었어. 알고 있었지? 나 준비한 거. 여리 목소리가 조금 떨렸어. 그 말에 혀니가 여리 허리를 팔로 감싸고는 등을 토닥거려줘. 멋있었어. 세상에서 최고로. 혀니의 말에 여리가 더 세게 끌어안으며 으아아, 소리를 내. 긴장했어. 혹시나 안 될까 하고.
꼭 칭찬을 바라는 대형견마냥 혀니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 통에 겨우 혀니가 달래서 맞은편에 앉혔어. 여전히 분위기는 좋았고 나오는 음식을 먹었어. 또 뭔가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있던 여리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내. 누가 봐도 반지였어. 연설할 땐 그렇게나 칼 같던 남자가 반지 하나를 건넬 땐 말을 못해 쩔쩔 맸어. 작게 헛기침을 한 열이가 떨린다는 듯 반지 케이스를 혀니 쪽으로 밀어놓고 말하기 시작해. 케잌속에 넣을까, 아이스크림 안에 넣을까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더라. 너와 떨어져 있는 동안 네 생각 제일 많이 했어. 엄마도 아니고.. 웃기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다짐했어. 오늘 같은 날을 꼭 만들겠다고. 네가 싫다해도 옆에 꼭 붙잡아 둘 거라고. 그러니까, 잡혀주라. 내 옆에 서서 더이상 혼자 지내지 마. 여리의 말에 혀니가 눈을 꼭 감았다가 떠. 앞에 여리가 진짜일까 순간 겁이 났거든. 반대로 혀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여리는 초조하기만 해. 그런 여리를 보던 혀니가 작게 웃었어.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좀 안아줘. 혀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혀니에게 다가가 꼭 안아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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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혼도 해야하고 아이도 입양해야하고 갈길이 멀어요 8ㅅ8
2부는 다음주에 들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