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60206 : 앨리스 : 사랑해 사랑해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2. 6. 21:56
*지각해버렸습니다8ㅅ8
*BGM은 제목과 동일한 미료의 사랑해 사랑해 를 들어주시면 조금 더 몰입도가 높아질지도 모른다는...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백업용 블로그에 올려둔 단편인지라 본의아니게 재업입니다 죄송합니다ㅜㅜ
w.Alice
저 여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올 수 있는 건지 볼 때마다 신기한 목소리는 이미 귓가에서 뭉개져서 들려올 뿐 정확한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저런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을 때, 그리고 고집을 부릴 때의 그 목소리. 이미 역할을 잃어버린 이 신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저 아이의 원망스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 이제 저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아 얼굴 위로 흐르도록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우리 두 사람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 더 서로에 대해서 몰랐었더라면, 더 같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비참하게 돌아설 수 없어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옮길 때 마다 들려오는 아이의 외침,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 발자국 옮길 때 마다 내 심장에서 흐르는 핏방울들. 모두 다 무시하고서 걸음을 옮겨야 하는 나. *** 환자 분의 몸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각혈(咯血) 하셨죠? 점점 빈도가 늘어갈 것입니다. 얼른 치료를 받으셔야 조금 더 사실 수 있습니다. 피를 토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의 연속이라 폐렴인 것인지 혹시나 해서 병원에 가봤다. 그렇게 간 병원에선 내게 시한부를 선고했다. 의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흐릿한 기억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을 뿐, 더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변백현 너의 눈물범벅된 네 모습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리고 너를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 고아로 태어나서 겨우 일자리를 잡아 살아가는 나와는 다르게 변백현은 부잣집 아들이었다. 흔히 말하는 재벌 2세.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그 아이를 더는 잡아둘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아이었다. 항상, 미안했고 미안했다. 그래서 변백현이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방탕하게 놀아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수한 아이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버린 것 같았다. 더럽고, 더러운 기억을. *** 나를 본 변백현의 그 충격적인 얼굴은 내가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 것 이다. 이름 모를 여자의 입술을 훔치며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내 모습을 그 아이는 그저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더러운 키스를 끝내자 아이는 내게 달려와서 뺨이라도 때릴 얼굴로 서 있다가, 클럽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기. ‘선생님, 지금 어디에요? 나 아는 사람이 잠깐 불러서 클럽 블랙아이 왔는데 선생님 닮은 사람이 어떤 여자랑 키스하고 가슴 만지고 그러는 거 봤어요. 선생님이랑 너무 달라서 얼마나 놀란 줄 몰라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 아ㄴ…….’ ‘나야. 클럽 블랙아이, 거기서 여자 가슴 만지고 키스하고 있던 사람 나라고,’ ‘선생님 거짓말 하지 마세요. 선생님이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요.’ 덜덜덜 떨려오는 목소리 사이에서도 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그 아이의 그 마음을 믿음을 잔인하게 깨 부셔야 하는 것은 내 역할 이였다. 한 없이 잔인하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나일 테고, 언젠가 그 상처는 누군가의 의해 치료될 것이다. 그 아이의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녀, 그 사람이. ‘나야, 나 맞아 변백현 확인 시켜줄까? 너 부잣집 아들이라고 뭐 좀 나올 줄 알았는데 순진하게 돈도, 니 뒤도 다 주더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된다고 너는 그랬지? 나는 아니거든, 돈이 있으면 여자를 찾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고 싶고 그런 거야, 너 같은 젖비린내 나는 애는 그냥 내 섹스파트너고, 돈줄이라는 거지.’ 말 한 마디 한 마디, 한 단어를 입에 담을 때 마다 내 심장을 찌르는 칼과, 그 칼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가득 넘쳐버릴 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고집 부리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며 가끔씩 고집을 피우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운 그 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생님, 이라는 호칭보다는 박찬열이라며 열 살은 더 많은 내 이름을 마구 부르는 그 아이는 한 없이 초라하게 울음을 터트리고서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백현아. 너무 뻔하고 초라한 말이지만, 난 널 사랑해서 보낸다. *** 화창한 봄날, 우리 둘이 길을 걸으면서 하던 얘기가 생각이 나 백현아.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 둘이 남아 그렇게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 그런 내 말에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너의 모습이 생각이 나. TV 속 너는 이미 나란 사람을 지우고 살아가는 거겠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의 옆에 있는 그 사람과 영원히, 나란 사람의 존재는 이미 아스라이 저 너머로 사라지고 있으니까. 너라도 행복하고 또 행복했으면 좋겠어. *** 506호 코드 블루 (Code Blue)입니다. 수술이 없으신 분들은 506호로 와 주시길 바랍니다. 화창한 봄날, TV를 보고 있던 환자가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켰다. 악성 종양이 머리에 차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였다. 처음에는 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었지만 봄까지는 살고 싶다 간절히 원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병색이 짙음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던 환자였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급작스러운 발작에 그의 병실로 달려가는 수많은 의료진들 중 한 사람의 얼굴에는 유독 안타까움이 가득 담겼었다. 주치의인 민석은 이성적인 직업군이라는 소리를 듣는 의사였으며 원래 성격 역시 이성적인 전형적인 이과 체질 이였다. 아무리 힘든 수술이여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서 깔끔하게 끝내는 민석이였다. 그런데 민석의 얼굴에는 너무나 어두운 표정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달한 찬열의 병실에서는 CPR이 한창이었다. 환자복을 걷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있는 레지 3년차인 경수의 얼굴이 보였다. 5분 경과했습니다. 라고 외치는 간호사의 모습에 줄(J)을 올리라고 외치는 경수의 모습, 그리고 마침내 가늘게 잡힌 심박에 한숨을 돌렸다. 민석은 알았다. 찬열이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다는 것을, 바쁜 의국 생활 속에서도 들려오는 외부 소식은 듣고 있었다. 박찬열 환자의 삶의 의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약혼식 당일까지만 지속 되는 시한부의 의지였다. 간절히 바라던 찬열은 위험한 고비를 수 없이 많이 넘겼다. 고통 속에서 항암치료를 계속했다. 그렇게 박찬열이 염원하던 애인(愛人)의 약혼식을 TV로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찬열의 간병인에게 들었다. 그의 의지는 딱 오늘까지였다. 코드블루가 내려진 환자였고, 비록 심박 수가 돌아왔다고 해도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 이였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은 민석도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선생님. 찬열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민석에게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였다. 오늘 그 아이가 약혼식을 올렸어요. 네 저도 봤어요. 너무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어서 고마웠어요. 찬열씨.. 그냥, 고마웠어요. 그 아름다운 미소를 잊지 않고 지어주어서. 그 아이가 지어주는 상대는 제가 아니라 그 사랑스러운 약혼녀겠지만 말이에요. ... 선생님. 네 찬열씨. 그 아이는, 절 잊어버린 거겠죠? 절 잊어서 그 아이가 행복한 것이겠죠? ... 감사했어요. 선생님. 살 수 없었던 저를 이만큼이나 살게 해 주셔서. 그 아이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 그리고 백현이한테 말 하지 않은 것도, 감사했어요. ..! 백현이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사촌형이 많이 있는데 특히 똑똑한 형이 있다고, 의사라고 했었고요, 이 병원에서 일한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름이 김민석이라고 했었어요. 선생님도 아셨겠죠. 제가 처음 살고자 할 때 불렀던 이름이 백현이 이름을 불렀으니까요. 찬열씨. 감사했어요. 선생님. 그리고 사랑했어요. 백현아. 내가 많이.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찬열의 목소리가 멈춰버렸을 때, 민석은 조용히 입술을 움직여 말을 했다. “2016년 5월 6일, 00시 01분 00초. 박찬열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을 자신의 사촌동생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