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60430 : 마일리 : HEART ATTACK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4. 30. 21:00


HEART ATTACK

w.마일리

 

 



찬열은 눈이 찌푸려질 만큼 강한 빛을 내뿜고 있는 동그란 조명등을 무감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동그란 조명의 잔상이 희미하게 남았다. 멈춰있는 공기가 무거웠다. 방송국 안에 존재하는 대기실 들 중 가장 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을 느꼈다.

 

수면부족으로 건조해진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는 손동작에는 옅은 짜증이 배어있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탓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일년에도 몇 번씩이나 있는 시상식이 누군가에는 꿈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귀찮은 스케줄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찬열아, 곧 시작해.”

.”

 


매니저의 말에 찬열이 소파 깊숙이 묻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대기실 안과 다르게 북적거리는 복도는 옅었던 짜증을 두텁게 만들기 충분했다. 등을 훤히 드러내놓고 다니는 여배우들과 스텝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전쟁통 같았다. 아역부터 활동했던 터라 선배인 연예인이 거의 없어 찬열은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인사를 그저 고개를 까닥이며 답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약간은 불량하게 걷고 있던 찬열의 발걸음이 뜬금없이 멈추어 섰다.

 

배우들의 독한 향수냄새 사이에 이질적인 향이 존재했다. 린넨향. 인공적으로 만든 향이 아니라 정말 방금 씻고 나와서 몸에 배어있는 비누향이 코끝을 스쳤다. 찬열이 저도 모르게 냄새의 주체를 찾으려 고개를 돌렸다. 평소 행실과 다르게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취향이 감춤을 모르고 울컥 치솟아 오른 탓이다. 찬열은 냄새의 주인을 작은 덩치의 여배우로 상상했다. , 여배우가 아니더라도 귀여우면 상관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에 걸리는 냄새의 주인이 없었다.

 

여전히 북적거리는 복도는 여배우들이 뿌린 독한 향수냄새가 덮이고 덮여 코가 아릴 정도의 냄새가 가득 차있었다. 잠깐 코끝을 스쳤던 린넨향은 그 냄새에 뒤덮여 금세 사라져버렸다. 분주한 찬열의 눈동자를 아는지 모르는지 매니저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찬열이 아쉬운 듯 입술을 씹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찬열의 등 뒤로 미처 다 마르지 못한 머리칼을 가진 동그란 뒤통수가 헐레벌떡 대기실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

 

 




아시아 스타상, 박찬열 님, 데인드한 님, 변백현 님. 축하 드립니다!”

 

 

찬열은 당연한 듯 불리는 제 이름에 카메라를 보며 공인의 미소를 만들어냈다. 어차피 더 이상 둘 곳도 없어 벤 안에 던져둘 트로피였다. 수상소감에서 예의상 해야 할 말을 생각하며 무대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찬열이 흠칫, 어깨를 굳혔다. 그 냄새다. 아까 복도에서 맡았던 린넨향. 이제는 냄새의 방향을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나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의 끝에 걸려온 냄새의 주체는 딱 상상만큼 조그맣고 상상보다 훨씬 더 귀여웠다. 찬열의 커다란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쥐었다 펴졌다 할 만큼.

 

멍하니 작은 남자를 따라 무대 위에 섰다. 찬열의 바로 옆에 그가 자리를 잡았다. 콧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단 린넨향이 목덜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좋았다. 흘깃흘깃 남자를 훔쳐보았다. 아장아장 소리가 날 것 같은 작은 발에는 단정한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저 작은 발에 맞는 구두가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하고 멍청한 생각을 했다. 이가 간질거리다 못해 뱃속까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데인드한 님부터 수상소감 해주실까요?”

 

 

사회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것처럼 들리더니 곧 사라지고야 말았다. 이제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작은 남자의 머리칼이 흐트러지는 소리, 그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눈을 깜박일 때마다 가지런한 속눈썹이 가라앉았다 올라가는 소리, 카메라를 보며 애살스레 웃느라 입 꼬리가 올라가는 소리, 동그란 광대가 살풋, 올라가는 소리, 침을 삼켜 작은 목젖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귓구멍을 울렸다.

 

하얗고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 예쁘게 자리잡고 있는 눈 코 입을 감상했다. 그 예쁜 요소들이 타인의 목소리에 부드럽게 휘어지며 웃음을 만들어낼 땐, 순간 폐가 제 기능을 잃어버려서 숨쉬는 것이 불가능했다. 유약하고 아름답게 생긴 손가락이 동료가 쥐어준 꽃다발을 제 보물이라도 되는 냥 꼭,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요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한번 더 생각하면 유치해서 몸서리칠 만한 생각인데, 실로 그랬다.

 

 



이번엔 작은 남자가 마이크 앞에 섰다. 금방까지 모든 소리를 멀어지게 했던 귓구멍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열려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려고 발악을 했다. 뒤통수는 더 귀여웠다. 동글동글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하얗고 가느다란 목선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언뜻언뜻 말을 할 때마다 말랑해보이는 볼 살이 시선에 걸렸다, 사라졌다. 그것이 너무나도 아쉬워서 한발자국, 옆으로 이동했다. 강한 조명을 받아 빛나는 옅은 솜털들이 찬열의 입술을 말아 물게 했다. 분명 대기실에서는 그렇게 짜증스러웠던 조명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더 강하게 빛을 뿜어서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다는 별 거지 같은 상상까지 했다.

 

그가 말을 마친 후 꾸벅, 허리를 숙이자 단정한 수트 팬츠 아래로 분홍빛의 복숭아뼈가 드러났다. 쿨럭, 삼킬 새도 없이 기침이 터져 나왔다. 얼른 무의미한 허공으로 동공을 가져가 흩뿌렸다. 저 답지 않게 광대에 열이 차오르는 것 같아서 당혹스러웠다.

 

이제 마이크 앞에 서야 할 사람은 찬열이었다. 분명히 어떤 말을 내뱉었고 그 말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온 머리통에 작은 남자가 가득 들어차버려서 30년을 써오던 언어조차 쓰레기통에 처박혀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말도 못할 만큼 기쁘고 설렜다.

내리쬐는 조명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환희의 빛처럼 느껴졌다.

 



.

.

.

 



저기요.”

? , 안녕하세요, 선배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오는 머리통이 둥글었다. 찬열은 또 제 기능을 잊어버린 폐 덕분에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어야 했다. 마주하는 눈동자가 목구멍을 바싹바싹 마르게 만들었다. 큼큼, 이미 그를 붙잡기 전에 수십 번 가다듬은 목을 또 풀었다. 병신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여전히 코끝을 스치는 린넨향이 정상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했다.

 

 

변백현씨 맞죠?”

! 선배님은 박찬열 선배님이시구요!”

 


애교 섞인 말투에 찬열이 또 쿨럭, 기침을 내뱉었다. 인공호흡이 필요하다. 아니면 링거나, 우황청심환이나그렇게 웃을 땐 예고 좀 해줄래?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꾸역꾸역 눌러 내렸다.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반대편에 앉아있는 백현의 옆모습만 바라보고 있던 찬열이다. 눈 깜박이는 찰나의 시간도 아쉬워서 시상식이 끝났을 땐 며칠밤을 샌 것처럼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는 작은 몸뚱이를 결국은, 돌려세우고야 말았다. 헌데 문제는 다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랑 같이 살래요? 손에 물 안 묻힐게.

 

아니야, 정신병자로 취급되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은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을 때 꺼내야겠다.

 

 

나랑 사귈래요? 내가 잘해줄게요.

 

전자의 말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저 째끄만한 손에 뺨을 맞아도 불만의 말을 내뱉을 수 없을 테다. 씨발, 박찬열. 정신 좀 차려.

 

찬열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뇌가 터질 것 같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이 감동스러운 작은 생명체를 제 손에 쥘 수 있을까. 으득으득 감당할 수 없는 안달에 이가 갈렸다.

 


, 정말 선배님 팬이에요.”

 

 

그래요? 씨발, 연예인하길 잘했네. 존나 잘했다. 진짜찬열은 다행이 속마음을 숨기는데 성공했지만 치솟는 입 꼬리는 숨기질 못했다. 일그러진 얼굴로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의 타 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현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제 핸드폰을 꺼내 불쑥, 앞으로 들이밀었다.

 


혹시 번호알 수 있을까요? , 싫으시면 안주셔도 괜찮아요.”

 

 

찬열은 지붕까지 뛰어오를 뻔한 몸을 겨우 추슬렀다. 아뇨, 싫긴요. 하고 점잖게 말하긴 했지만 태어난 이래로 가장 큰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그래, 친해지고 싶다고, 핸드폰 번호를 달라고 했어야 맞았다. ‘나랑 같이 살래요라니. 생각 없이 내뱉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찬열이 꾹꾹, 힘주어 제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는 칼같이 전화를 걸었다. 백현이 먼저 핸드폰번호를 물어주었으니 연락은 내가 먼저 해야지. 첫 메시지를 뭐라고 보내지. 밥 먹자고 할까?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나와 주려나.

 

바지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진동이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찬열이 씨익, 멋지게 웃으며 백현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백현이 감사하다며 또 허리를 숙여왔다. 찬열은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고 싶어 손바닥이 간질거렸으나 참아냈다. 다시 마주하는 눈동자에 찬열이 꿀꺽, 침을 삼켰다. 한마디라도 더 섞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씨발눈치는 좆도 없어서찬열은 구겨지려는 미간을 백현을 바라보며 풀어냈다.

 

 

먼저 가볼게요.”

, 선배님. 조심이 들어가세요.”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를 돌면서도 백현이 아쉬워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나중에는 꼭, 데리고 살아야지. 첫만남부터 이렇게 헤어지기가 싫은데 만남을 거듭하면 얼마나 싫어질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뻔했다.

 




.

.

.

 




찬열은 모든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아시아 스타상을 경건하게 쥐고서. 벤에 처박힐 것이라 예상한 것과 다르게 아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들고 있었다. 찬열은 이미 상으로 가득 메워진 찬장을 심도있게 바라보았다. 어디에 놓아야 가장 빛나고 눈에 뛸 수 있을까. 백현을 만나게 해준 트로피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다른 어떠한 상보다 위에 군림할 수 있었다.

 

찬열이 결심한 듯 찬장 문을 열었다. 그리곤 남우주연상이고 대상이고 미련 없이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 가운데에 조명을 받고 선 아시아 스타상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 오랜 시간 동안.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는 미소로 얼굴을 잔뜩 물들이고서.

 




 

***

 

 




이거 대본 괜찮더라. 좀 봐봐.”

안 해. 바빠.”

아니, 스케줄이 하나도 없는데 왜 바빠! 네가 다 걷어차고 다녔잖아!”

 

 

준면이 씩씩거리며 분노의 콧김을 내뿜었다. 그가 발을 동동 구르던 말던 찬열은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하얀 사무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선명한 얼굴을 수백 번 째,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얼굴을 완성하면 줏대 없이 입이 벌어지며 호선을 만들어냈다. , 얼른 보고 싶다. 벌써 백현을 알아오고 함께 시간을 보내온 지 일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여전히 숨도 못 쉴 만큼 사랑스러워서 찬열은 늘 바빴다. 매 순간마다 백현을 떠올리고 찬양하느라.

 


바빠. 백현이 촬영장에 커피차 보내놨단 말이야. 가서 구경해야 돼.”

?”

백현이가 청포도 주스 먹는 거. 고 째그만한 손으로 들고 쭙쭙 마실 거야. , 씨발. 상상만해도그래서 청포도는 내가 직접 유기농 농장에서 주문해서 배달시켰어.”

 


찬열이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준면을 바라보았다. 넋을 잃어 흐물흐물 흘러내리고 있는 준면의 표정은 이미 백현의 얼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진짜, 너무 보고 싶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결국 욕구를 이기지 못한 찬열이 벌떡,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코트를 움켜쥐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간다고 메시지 해야지. 익숙하게 잠금을 풀어낸 핸드폰의 배경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백현에 따라 웃고야 말았다. 예뻐라이 사진의 실물을 지금, 만나러 간다. 그럴 수 있는 관계가 된 것이 뿌듯했다.


 

어디가 새끼야!”

백현이 구경간다니까.”

 

 

찬열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완전히 사라진 찬열의 인기척에 준면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젠장, 그 놈의 변백현, 변백현. 우리 회사 최고의 돈줄이 점점 병신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준면의 머리에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스케줄을 같이하면 되지 않은가. 준면이 테이블 위에 비참하게 널브러져있는 대본을 바라보았다. 너에게 빛이 보일 것 같구나. 씨익, 웃는 준면은 괜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획사의 헤드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 감독님. 이번에 주신 대본에서 찬열이 동생 역에 추천해드리고 싶은 배우가 있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찬열 좋고, 백현 좋고. 그리고 나도 좋고!

 

 




***

 




 

맛있어?”

, 마시써.”

 


끄덕이는 동그란 머리통에 찬열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못했다. 제 앞에 앉아 청포도 주스를 냠냠 맛있게 먹고 있는 백현을 보고 있으니 충족감이 끝을 모르고 커졌다. 빨대를 빨아당기느라 홀쭉해진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버릇처럼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를 키자 금세 눈치를 채고는 브이- 를 해온다. 빨대를 문채로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말도 못하게 귀여워서 찬열은 눈물이 날 뻔했다.

 

백현이를 낳아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백현이가 설 수 있는 땅을 만들어준 신에게 감사를. 백현이를 올곧게 담을 수 있는 눈을 주신 나의 어머니께 감사를.

 

 

찰칵-

 

 

오늘도 찬열의 사진첩에는 소중한 보물 하나가 늘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아까운 마음이 잔뜩인데, 또 이렇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내 옆에 있어요, 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 역시 잔뜩이라 찬열의 SNS에는 백현의 사진이 가득했다. 그래서 오늘도 역시, 업로드.

 

 


백현이 촬영장에 놀러 왔다. #청포도주스 를 좋아하는 백현이!

#애기 가 열심히 촬영하고 있는 #Ring_shaped 많이 사랑해주세요.

#사랑둥이 #강아지백현이 #예쁜백현이 #귀여운백현이 #우리백현이

 

- 읔 백현오빵 느므 귀얍다 ㅠㅠㅠㅠ 빨대 물고 있는 거 씹덕

- 오빠 또 백현이 촬영장 갔어요? 어제도 가지 않았나? 둘이 친한 거 너무 보기됴타!

- 백현오빠 진짜 멈뭉이같다 ㅜㅠㅠㅠㅠ 너무 귀여워요 끅

- 백켠이 Ring-shaped 완젼 기대하고 있어요! 차녈오빠도 까메오로 출연해주심 안대여?

- 오빠 이왕 사진찍는거 같이 찍어주심 안대오? 볼 붙이고 찍어주셓ㅎㅎㅎㅎ

 

 


업로드를 완료하자마자 쏟아지는 백현의 칭찬에 괜히 저가 뿌듯해졌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백현에게 집중했다. 청포도 주스를 꼴깍꼴깍 잘도 삼키는 것이 기특해서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백현이 금세 바닥을 드러낸 주스에 아쉬운 듯 눈썹을 내렸다. 그 얼굴에 놀란 찬열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더 먹을래? 가져다 줄까? 백현이 찬열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불러. 점심에 형아가 보낸 샌드위치도 왕창 머거써.”



그랬어? 맛있었어? 찬열이 오른쪽 손으로 턱을 괴며 백현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사랑이 주렁주렁 매달려 떨어질 것 같았다. 백현 역시 왼쪽 손으로 턱을 괴며 찬열을 바라보았다. 마주하는 시선이 이제는 익숙해질 만큼 긴 시간이 흘렀는데 시선에 익숙해지긴커녕 빠르게 정상적인 박동을 벗어나는 심장에 익숙해지고야 말았다.

 

여전히 백현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소음들이 점점 멀어진다. Fade-out. 그렇게 멀어지고 나면 백현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소리, 가지런한 속눈썹이 팔랑이는 소리, 작고 얇은 입술이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가 찬열의 세상을 지배했다.

 

 

백현아.”

?”

 


다정하게 불리는 제 이름에 또 다정하게 대답을 해주는 백현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이런 널 어떻게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어.

 

 

형이랑 살자.”

?”

형이랑 같이 살자. 형이 네 손에 물 안 묻힐게.”



찬열의 말에 백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작 찬열은 저도 모르게 뱉은 말에 당황했다. 이렇게 뜬금없이 할 말이 아니었는데. 1년 동안 백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던 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일말의 망설임 없이 뱉어내고야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아니 무만 썰어선 만족을 하지 못한다. 바라는 바를 이루어야 오늘 밤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매일 보는걸?”

그러니까 어차피 매일 보는 거 그냥 같이 살자.”

 


진지한 찬열의 말에 백현이 꿈뻑꿈뻑 눈만 깜박였다. 찬열은 이 작은 머리통에서 무슨 생각이 맴돌고 있을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거절하면 어쩌지. 그럼 답지 않게 울지도 몰랐다. 백현에게 부정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백현이 입을 열었다. 찬열이 귀를 쫑긋거리며 백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형아, 나 아침잠 엄청 많아서 매일 늦잠 자.”

 

좋네. 매일 아침마다 잠자는 널 감상할 수 있겠다. 얼마나 귀여울까.

 

 

막 옷도 여기저기 벗어놓고 다녀서 엄마가 잔소리도 엄청 해.”

 

세상에, 다니는 길마다 네 흔적이 있다니. 좋은 버릇이네. 매 순간마다 널 떠올릴 수 있겠어.

 

 

또 반찬투정도 많이 해서 형아가 스트레스 받을지도 몰라.”

 

이미 내 냉장고엔 네가 좋아하는 것들뿐인데. 내가 산 음식들로 볼을 부풀리고 있는 너의 모습은 밥 따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데, 스트레스라니. 널 만나면서 내 세상에선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사라 진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걸?

 

 

그리고 원피스도 엄청 좋아해서 저녁마다 시끄럽게 TV볼 건데?”

 

그럼 나는 원피스를 보고 있는 널 보면 되겠다. 나의 하루 스케줄에 또 네가 자리를 잡겠구나.

 

 

! 게다가 나 저녁에 무서운 꿈꾸고 그러면 혼자 못 자서 형아 방에 처 들어갈지도 몰라. 형아 나 때문에 잠 못 잘걸?”

 

그래, 그건 좀 문제가 있다. 네가 내 옆에 누워있는데 내가 어떻게 잠을 청할 수 있겠어.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불면의 밤이 될 테다.

 


그래도 괜찮아?”

네가 말한 것 중에 괜찮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데?”

 


오히려 너와 함께할 시간들을 더 기대하게 돼버렸다. 네가 말한 너의 일과에 내가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설레서 심장도 떨려왔다. 백현이 여전히 턱을 괸 채로 찬열을 바라보았다. 찬열은 조마조마한 감정을 숨기는데 전력을 다했다. 뱃속이 울렁거렸다. 거절당하면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지. 그냥 이렇게 옆에 있는 걸로 만족해야지. 백현이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떼어내곤 찬열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깊은 고민 없이 발랄하게 외쳤다.

 

 

그래! 같이 살자, 형아!”



찬열은 그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바쁘게 걸어 다니는 스텝들과 찬열을 연예인으로 캐스팅해준 준면, 그날 백현을 만났던 시상식에 초대해준 관계자들과 무수한 사물들, 하물며 부유하는 먼지들에게까지 감사했다. 눈물이 날만큼 감격스러웠다. 이 감동스러운 생명체와 한집에서 24시간을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니. 마음이 급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졌던 일들을 행하고 싶어 몸이 달았다.

 

 

진짜? 언제부터? 오늘저녁부터 형 집에서 자면 안돼? 형 집에 다 있어. 몸만 오면 되는데.”

오늘부터? 그래! 우앙, 그럼 형이랑 매일매일 같이 있겠네? 밥도 같이 먹고! 좋다! 나 형아 좋아!”

 


찬열이 참지 못하고 결국 백현의 동그란 머리통을 끌어당겨 이마에 입을 맞추고야 말았다. 그에 백현이 애살스레 눈을 휘며 웃었다. 이정도 스킨십은 이미 과거부터 철저하게 계획된 찬열의 의도에 이미 익숙한 백현이었다. 그래도 자꾸 손을 대다 보면 더한 것을 바랄 것 같아서 찬열이 늘 꾹꾹 눌러 참고 있긴 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울 땐, 감히 이성을 가둘 수 없어서 입술이 먼저 나가곤 했지만.

 

하지만 역시, 오늘은 한번 가지곤 이 사랑스러움을 이길 수 없었다. 쪽쪽쪽,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잔 키스에 백현이 간지럽다며 웃었다.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예쁜 우리 애기. 그렇게 둘만의 세계로 빠져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백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현씨! 촬영 들어갈게요!”

, 형아 나 가야겠다.”

. 형 오늘 스케줄 없어서 여기서 기다릴 거야.”

진짜? 얼른 끝내고 올게!”

 

 

뛰어가는 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찬열의 표정이 흐물흐물 녹았다. ‘올게’. 별 생각 없이 네가 뱉어낸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도 감동을 받는 나다. 그런 순간에도 혹시나 넘어질까, 팔랑거리는 머리칼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완전히 사라진 백현의 흔적에 찬열이 그제야 벅찬 가슴을 내쉬었다. 몇 시간만 있으면 나의 집에 데리고 가는 거다. 드디어 데리고 살 수 있게 됐다. 씨발, 전생의 박찬열아 대체 무슨 공을 세웠냐. 진짜 나중에 만나면 절이라도 해야지. 덕분에 나는 기적과 함께 생을 살아가고 있다. 한동안 멍하니 기쁨을 오롯이 즐기던 찬열이 뒤집어 놓았던 핸드폰을 들었다.

 

우리 백현이 칭찬 확인해야지. SNS에 접속해 수천 개가 달린 칭찬 댓글을 보며 뿌듯해하던 찬열이 쓱쓱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자 백현과 함께한 1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이 나타났다.




여러분 저랑 백현이가 함께 화보를 찍었습니다.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비밀인데 이거 제 침실에 커다랗게 인쇄해서 걸어놨습니다. 그리고 #찬백 이라는 이름 참 좋은 것 같습니다ㅋㅋ #찬백화보

#귀여운백현이 #사랑둥이 #우리백현이 #강아지백현이 #예쁜백현이

 


 

해외촬영 때문에 일주일 만에 만난 백현이. 너무 보고 싶었어. 선물로 사온 목폴라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다행. 이거 우리 첫 #커플템 ㅎㅎ #찬백

나는 XL 배켠이는 M #작은백현이 #귀여운백현이

 

댓글 , 빼먹었다. #사랑둥이 #예쁜백현이 #우리백현이

 


 

백현이가 진행하는 #인기가요 보셨나요? #우리백현이 너무했어. 너무 귀여웠어.

저는 TV로 보기엔 아까워서 코앞에서 보고 왔습니다. 부럽죠? #찬백

#강아지백현이 #예쁜백현이 #귀여운백현이 #사랑둥이

 


 

백현이랑 LA로 놀러 갑니다. 우리 백현이 #애기발 ㅠㅠ 너무 귀엽죠?

#세상에서제일귀엽게작은데자기가작은거싫어하는 #귀여운백현이 #찬백

#사랑둥이 #예쁜백현이 #우리백현이 #강아지백현이

 

 


1년간의 추억들은 틈날 때마다 되씹고 감동하지만 그 감동의 크기는 줄어들지 못했다. 오늘 저녁에는 씻고 같이 샤워가운만 입고 올려야지. , 샤워가운이라니. 백현이 아직 애기야. 정신차려, 박찬열. 못 돼먹은 새끼. 그래도 사진 찍는 동안만. , 내 침대 위에서 찍으면 좋겠다. 백현이가 내 침대에 눕다니. 찬열이 커다란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백현이와 시간을 보낼수록 점점 찬열은 자신이 조금씩 퇴화하는 것을 느꼈다. 끝을 모르고 순수해져서 더 그랬다. 세상에 찌들만큼 찌들어놓고는 백현이 앞에선 그 무엇도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순수를 연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그게 일상이 되고 내가 되어버렸다. 근데 그 퇴화가 몸서리치게 좋아서, 그래서 도무지 관둘 수가 없다.

 

늘 내가 가늠하는 것 보다 널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가늠할만하면 커지고 따라잡을 만 하면 커지는 마음이라 더 어려웠다. 결국 찬열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백현이 사라진 길을 따라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구경만 해야지. 진짜, 조용히. 통제가 안 되는 심장은 말도 못하게 시끄럽겠지만 지혜로운 신은 타인의 심장소리를 쉽게 듣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곧 시선의 끝에 걸려오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의 입술이 커다랗게 호선을 그리며 벌어졌다.

 


귀여운 백현이.

예쁜 백현이.

사랑스러운 내, 백현이.

 

나의, 백현이.

 

 




그날 저녁 찬열의 SNS 업로드.

 

 

#귀여운백현이 가 제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제 #찬백 이 함께 사는 겁니다. 너무 행복해요. 앞으로 형이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샤워가운 입은 #섹시한백현이 부끄럽네요ㅎㅎ 백현이는 지금 자는데, 끙끙거리면서 자요. 진짜 귀엽죠 ㅠ 역시 #강아지백현이

#사랑둥이 #예쁜백현이 #우리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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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찬백호에 첫인사 드립니다. 마일리입니다. 잘부탁드려요. 글 재미없게 쓰는데 천재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때문에 트윗에서 푼 썰의 반도 쓰지 못한 걸까요나중에 기회가 되면더 올릴까요? 그럴 수 있을까요

+) 제목은 호수 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Thank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