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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3 : 푸른사자 : 스트리트 - 시작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8. 13. 22:04

*트위터에서 풀었던 내용인지라 오탈자 및 반말체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야기 속 모든 사항은 사자가 창조한 허구의 내용들입니다.

*다소 비윤리적, 비도덕적 소재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소설 ‘해리포터’ 속 블레이즈 자비니의 설정을 차용하였습니다.

*배경은 한국과 유사한 가상의 제3국이라고 상상해 주세요.



스트리트 -시작점

백현의 8번째 배우자 찬열 X 결혼이 수단인 백현

W. 푸른사자



백현은 어린 시절을 매우 다양한 아버지와 보내며 자랐어. 그의 아버지들은 나이나 외모는 물론이고 인종도 널을 뛰었지. 하지만 그중에 그의 친부는 단 한 번도 없었어. 그의 어머니는 수많은 사랑에 빠졌고, 수많은 애인을 골랐으며, 많은 남편들을 가졌지만 정작 백현의 친부의 마음만큼을 훔칠 수가 없었거든.


뭐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못 훔친 것은 아니야. 그 남자도 죽을 때까지 그녀를 사랑하긴 했으니까. 다만 그들이 만난 건 그 남자의 4번째 결혼기념일 꽃집 앞이었고, 그 남자는 그들이 사랑이 불러일으킬 각종 문제들을 알면서도 그 사랑에 투신할 남자가 아니지. 그렇기에 남자는 사고로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어.


아마 그 남자는 자신이 유일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그 스스로가 입에 가져댄 술에 무엇이 섞여있었는지도, 그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그 날 이후 왜 그녀가 완벽히 종적을 감췄는지도 몰랐을 거야. 그녀의 태중에 그의 생물학적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을 테고 말이야. 그의 장례식장에서 그녀는 이제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배를 어루만지며 소중한 아이에게 속삭였어. 아가야, 아빠란다 라고 말이야. 입가에는 빌어먹게도 예쁜 그리고 승리자의 것 같기도 한 비소가 지어져 있었지.


그녀의 빌어먹게 깐깐하고 비틀린 자존심은 그녀를 거부하고 도망치려면서도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남자가 매우 거슬렸어. 남자에게 애정이 없었다는 건 아니야. 아마 그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한 남자일걸, 백현을 빼면. 다만 사랑은 사랑이고,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다 이거지.


평생 감정적 갑으로만 살아온 그녀는 마치 제가 매달리는 것 같은 이 상황이 매우 싫었어. 그래서 어떻게 엿을 먹여야하나 고민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별 미친 생각이 하나 탁 치고 지나갔지. 그 남자의 아이를 가지자는 어지간한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막장적인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녀는 괴랄했고, 그 생각이 이상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어. 거기다 그녀는 그런 그녀를 제어할 친구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도 없었지.


한번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바로 계획에 들어갔어. 문제는 어떻게 베드인하냐는 거였지. 말만 걸어도 깜짝 놀라며 십리 밖으로 도망칠 기세인 남자를 상대로 말이야. 하지만 이상한데서만 천부적인 그녀의 두뇌와 시체들에 별짓을 다하다 잡혀 평생 큰집에서 여생을 즐긴 살인마 부모 밑에서 자란 기억이 합쳐져 양심과 윤리의식 따위는 가져본 적 없는 그녀의 행동력과 만나자 그런 건 이제 문제도 되지 않았어. 그렇게 시작된 일은 단숨에 끝났고, 임신이 확인되자 그녀는 따뜻한 곳이 가고 싶다며 종적을 감췄지. 애초에 애를 갖고서도 그 남자한테는 알려줄 생각이 없었어. 다만 그 남자도 모르게 그 남자의 윤리, 가치 따위를 부쉈다는 소소한 승리감을 원했을 뿐이었지. 그녀는 그렇게 얻은 아이를 사랑했어. 그 사랑을 표백현하는 방식이 좀 괴상하고, 애초에 그녀부터가 도덕이나 양심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보니 그런 그녀를 보고 자란 아들도 비슷해졌다는 게 문제이긴하다만. 수많은 아버지를 보며 아들은 그나마 윤리라든가 하는 걸 이해하고, 필요성에 동감하며, 흉내를 낼 의지를 갖고 있는 어른이 되었지.


그렇게 어른이 된 백현은 뭐 자유분방한 영혼이었어. 수많은 사별로 부자가 된 어머니가 있다 보니 경제적인 면에서도 자유로웠고,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도 윤리관이 문제가 많아 그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저 우리 예쁜 아들이 그랬구나, 근데 밥은 먹었어? 라고 대꾸하니 원. 그래도 학교는 꼬박꼬박 잘 다녔는데 그의 어머니가 딴 건 몰라도 아들의 지적수준이 낮은 건 좀 쪽팔릴 것 같다며 학교는 가라 한 덕분이었지.


그렇게 졸업을 한 학기 정도 남겨두고 그의 어머니는 돌연 사라져버렸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지. 처음에 백현은 그저 그녀가 말없이 여행이라도 간줄 알았어. 그녀는 여행을 몹시 좋아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뿅하고 갔다가 뿅하고 돌아오는 게 주특기였거든. 그래서 백현은 평소처럼 생활하며 매일 우편물만 꼼꼼하게 확인했어. 백현이 어렸을 때는 그녀가 그도 데리고 떠났지만, 어느 정도 큰 후 백현이 거부의사를 표명하자 아쉬워하며 도착지에서 풍경이 찍힌 우편을 보내는 걸로 대신했거든.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이번에는 어디이려나 하고 우편물이나 확인했지. 하지만 우편은 오지 않았어. 대신 그를 찾아온 건 경찰이었지.


경찰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귀를 떠돌았어. 요점만 정리하자면 백현의 명의로 되어있는 오피스텔에서 그의 엄마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사인은 총상이며, 빌어먹게도 백현은 총기보유 허가를 받은 사람인데다 알리바이도 없으니 네가 범인인 것 같다는 소리였지. 그 소리를 다 듣고 나서도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백현이 문득 말했어. 저기요. 경찰들이 바짝 긴장해 그를 쳐다봤어.


백 : 커피 한 잔만 주실래요?


억양 없는 말에 모두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지 .하지만 백현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어. 다만 머릿속으로 빠르게 얼마간의 제 새아버지의 행보를 되짚어봤지. 그리고 무덤덤하게 떠올렸어.

아 제 새아버지가 범인이고 친절하게 함정까지 파놨구나. 그런데 그 사람이 직업이 뭐였지. 아, 판사. 망했네.

백현의 앞에 하얀 종이컵이 담긴 커피가 한잔 놓였어. 제 앞에 놓인 커피가 다 식고서도 백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에 속이 타는 건 경찰들이었지. 그렇게 취조실에 앉아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차에 이번에는 경찰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어. 백현의 새아버지였지. 여러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들어온 남자는 맞은편에 앉아 두 손을 깍지 껴 책상 위에 올려두었어. 희끗거리는 머리칼이 그의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그와 어울리지 않고 젊고, 깔끔했으며, 탄탄했지.


아 : 백현아


남자가 자상하게 백현을 불렀어


아 : 몸은 좀 어떠냐


자상한 표정이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눈을 백현은 볼 수 있었지


아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 들었다


잠시 취조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어


아 : 나는 백현이 너를 믿는다. 너는 그럴 아이가 아니

백 : 저도 절 믿어요. 제가 그러지 않았다는 걸


백현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아 잔뜩 갈라지는 목소리로 앞에 앉은 남자의 말을 끊었어


백 : 하지만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긴 해요. 왜냐면 나는 우리 어머니의 아들이고, 조부모님의 손자니까.


무심하듯 말하는 백현의 말투에 남자의 표정이 견고해졌지


백 : 밖에서 이 애기 듣고 있는 사람들 표정 궁금하지 않아요? 아마 무슨 소린지 몰라서 잔뜩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겠지.


백현이 이미 식은지 오래인 종이컵을 쥐었어.


백 : 그런데 당신 표정은 그대로네요. 알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선수 친 거고


남자의 손이 모서리 쪽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눌렀지.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차단하는 버튼이었어.


백 : 사실 누가 봐도 이상해야 정상이야. 사별도 한두 번이어야 우연이지, 어떻게 열댓 번을 사별을 해


백현이 남자의 손짓을 보고서는 더욱 과감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어


백 : 다들 알고 있었겠지, 범인이 누군지. 그 여자가, 우리 어머니가 한 짓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 모르면 그게 바보지


백현이 손에 쥔 종이컵의 두터운 바닥 테두리면으로 철제 책상을 두들겼어


아 : 네 엄마는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지. 연기도 아주 뛰어났고. 거기다 보고 자란 게 있어서인지


남자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는지 잠시 침묵했어


백 : 뛰어난 예술감각을 갖고 있으셨죠


남자가 혐오스럽다는 듯 보았다 포기하고 다시 말을 잇기 시작 했어


남 : 미친 여자였어, 완전히 돌았다고

백 : 지금 자기소개시간이에요?


백현이 짓궂게 웃었어


백 : 당신도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였잖아요. 우리 엄마를.


규칙적으로 취조실을 울리던 소리가 멈췄어. 대신 거대한 침묵이 자리했지.


백 : 설마 이렇게 잡혀오면 내가 진짜 엄마를 죽인 건 아닐까 해서 공포와 자괴감에 휩싸여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고작 내 몽유병을 비롯한 별 시답지도 않은 정신질환들 때문에?


남자는 침묵했고 백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다가 고개를 저었어


백 : 허접해도 너무 허접해서 마음이 다 아플 지경이네


백현이 진심이라는 듯 심장을 움켜 쥐었어


백 : 이봐요, 나는 우리 엄마 아들이에요. 엄마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고, 언제나 함께했어요. 그런데 그런 내가. 설사 엄마를 죽였다고 해서의심 받을만할 정황과 증거들을 사방에 뿌려놨겠어요? 내가 돌아도 제대로 돌지 않고서야.


백현이 어깨를 으쓱였어


남 : 그 엄마에 그 아들이구나

백 : 당연한 소리를


잠시 둘 사이에 적의 가득한 눈빛들만이 오고 갔어


남 : 네 엄마는 아주 머리가 좋은 여자였다. 그래서 증거를 없앨 때도 모두 없애진 않았지. 그러면 더욱 의심받을 테니까.


남자는 허공에 말하는 듯 보였어


남 : 그 여자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만한 증거는 없애는 대신 자신 때문에 살인이 일어난 듯 교묘하게 사건을 비틀어놨어. 그리고는 마치 그녀를 몇십 년째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 있는 듯 만들어놨지. 그리고 그 여자의 연기력이 발휘되자 그건 꽤나 그럴싸해졌어. 나도 거기에 속았고.


남자의 손에는 여전히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어


남 : 모든 걸 알았을 때 구역질이 나 견딜 수가 없었어

백 : 그래서 엄마를 죽이고, 나한테 덮어씌우시려하셨다?

남 : 그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아. 어차피 너도 최소한 그 모든 걸 알고서도 묵과한 죄 정도는 있을테니 억울하지만은 않겠지

백 : 억울한데?

남 : 뭐?

백 : 그래서 당신 죽었어요? 아니잖아. 뭐 우리 엄마 손에 죽은 남자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벌인 짓거리라면 댁 말처럼 나도 침묵한 죄를 받아야할지도 모르지. 그런데 댁은 살아있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살해 위협 한 번 받은 적 없잖아. 내가 알기로는 우리 엄마는 최근에 계획 세운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백현의 말은 사실 궤변에 가까웠어


백 : 나는 당신한테 잘못한 게 없어요, 유감스럽게도. 그래서 억울해요.


백현이 말을 마치고 마치 자기 말에 불만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어. 남자는 멍하니 있었고,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 손의 색은 시간단위로 변해갔지


남 : 그래, 그렇다 치자. 그래도 네가 범인으로 처벌받게 될 거라는 건 변하지 않아. 네가 그 시답지도 않다고 표현한 것들이 알리바이 없이 텅 빈 네 시간들과 만나서 밖에 있는 저들이 널 옭아매게 만들테니까.


백 : 내가 가만히 있으면 그렇겠죠


백현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백 : 그런데 나는 바보가 아니라서요


그렇게 말하며 종이컵을 쥐는 백현의 모습에 남자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어. 더 이상 이어질 대화가 없으리라 생각한 탓이었지


백 : 이제 더 이상사적으로 볼 일은 없을 테고, 재판 때나 되어야 보겠네요. 그때까지 연기연습 많이 해두세요. 사랑하는 아들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방황하는 아버지에서 아내를 죽인 게 확실해 보이는 범인이 무죄로 풀려나는데 그 범인이 아들이라는 또 다른 비극 속에서 분노와 슬픔과 별의별 감정을 느끼는 남자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려면

백현이 눈을 찡긋거렸어


백 : 연습 많이 하셔야 할꺼에요


거기까지 들은 남자는 방을 나가버렸고, 서둘러 들어오는 경찰을 보며 식은 커피를 들이킨 백현이 말했어


백 : 전화 한 통만 빌릴 수 있을까요?


앞에 남자들은 백현이가 자신들에게 한 첫마디가 너무나 예상 밖이었는지 우왕좌왕했어


백 : 변호사한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백현은 그 모습에도 싱긋 웃을 뿐이었지

시간을 뛰어넘어 결과적으로 백현은 재판에서 이겼어. 여전히 그를 가지고 수근덕대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가 무죄로 풀려난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지. 구치소에서 나오던 날, 그를 마중 나온 건 그의 변호사였어. 앞머리를 멋들어지게 올린 채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백현이 나오자 후다닥 와서는 끌어안아주었지


변 : 고생했다

욱 : 별, 나는 그냥 빵에 처박혀있다 나온 게 다인데요 뭐 고생은 아저씨가 다했죠. 나 빼내느라


백현이 선임한 ‘욱’이라는 이름의 변호사는 그와 꽤 친분이 두터운 사람으로, 백현에게는 사실 가장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지. 어렸을 때, 어머니의 남편 문제로 법률자문을 위해 만났던 변호사인데 약간 맛이 간 면모가 있는 인간이었던 거야. 2대째 내려오는 그 행적에 감명을 받았다나 뭐라나. 그래서 어쩌다보니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백현이 모자와 거의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사이였지. 이번처럼 법적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처리해주면서 말이야


욱 : 소식은 들었지?

백 : 네


예상과 다르게 재판이 백현에게 유리해지자 계속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던 그의 새아버지는 결굴 미친 짓을 했어. 아무도 들어 올수도, 나갈 수도 없게 만든 뒤 집에 불을 지른 거야. 불은 집이 완전히 전소된 뒤 꺼졌고, 며칠 뒤 그의 사무실로 편지가 한 통 왔어. 생전에 그가 보낸 둔 것이었지. 안에 든 건 유언장이었는데, 내용은 짧았어.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그 아내의 아들이 범인으로 지목된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자신이 없다고. 모든 게 평화롭던 모자사이에 끼어든 자신의 잘못 같다고. 아내가 그립다는 게 주 내용이었지. 그리고 다음 날 백현에게는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말이야.


욱 : 그때도 말했다시피 그 미친놈이 집과 함께 거의 모든 재산을 불태웠어


마지막까지 백현 모자에게 엿을 먹이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강력했는지,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과 아내의 재산 중에서도 그가 손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집에 다 넣어두고 불을 질렀어. 백현에게 가는 게 거의 없도록 말이야.


욱 : 그 과정에서 네 몫의 어머니 유산까지 불태워지는 바람에

백 : 남은 게 없다는 소리시네요

변 :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봐야지.


특히 백현네 어머니는 떠도는 걸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라 부동산 류의 자산이라곤 집 밖에 없던 사람인데, 그 집도 불태워졌으니 뭐.


백 : 지금 남은 돈이면 마지막 학기는 다닐 수 있겠죠?

욱 : 어, 어. 아마 그렇긴 한데. 너 설마 바로 학교로 돌아가게?

백 : 그럴 건데요.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아무리 무죄선고가 나왔다고 해도 아직 수근덕대는 사람이 많았어. 그런데 바로 학교로 돌아가겠다니 욱의 입장에서는 말리고 싶었지. 하지만 그런다고 들을 백현이 아니니 원. 욱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차문을 열 뿐이었어.


백 : 나 당분간아저씨 집에서 살래요

욱 : 네에, 네. 그러실 줄 알고 벌써 방 하나 치워 놨습니다

백 : 오, 역시


투닥 거리며 차가 출발하고, 백현은 욱이 가져온 상속 관련 서류들을 마지막으로 검토했어. 욱은 서류를 확인하며 군데군데 서명을 하는 백현을 힐끗거렸지.


백 : 할 말 있으면 빨리해요. 나 이거까지만 마저 서명하고 잘 거니까. 나 잔다고 같이 졸 건 아니죠?


시큰둥하게 서류에서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을 거는 백현에 욱은 뭐라 쭝쭝거리다 어물쩍 물었어.


욱 :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학교에 돌아 가려는 거야? 주위 시선도 있고, 너 몸 상태도 썩 좋진 않을 거 아냐


옆에선 계속 서류끼리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왔어


욱 : 거기다 너 휴학 한 번 안하고, 지금까지 계속 다닌 거잖아. 이번 기회에 여행도 다니고, 좀 쉬다가

백 : 아저씨

욱 : 어?


서류를 다 본건지 백현이 꽤 큰 소리를 내며 펜의 뚜껑을 닫았어.

백 : 내 성격 알죠? 나 귀찮은 거 되게 싫어하는 거

욱 : 알지. 그런 놈이 학교는 꼬박꼬박 다니니까 내가 신기하다는 거잖아

백 : 우리 엄마가 평생 나한테 뭐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딱 하나 그거 하나 부탁하더라. 최소한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학력수준은 갖추자고, 그 뒤로는 맘대로 하라 길래 그거 때문에 열심히 다녔어요. 빨리 다 해치워버리고 우리 여사님 돈 많으시니까, 그 돈으로 놀고먹으려고


백현이 서류를 탁탁 소리를 내며 정리했지


백현: 근데 꼴랑 한 학기 남겨두고 그 돈이 홀라당 다 타버렸네? 진짜 젠장 맞지. 근데. 그렇다고 돌아가지 않을 수는 없잖아. 그게 우리 여사님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한 부탁인데. 어떻게 그래. 돌아가서 졸업해야지. 그건 해야지. 여태껏 내가 누구 돈으로 놀고먹었는데, 그것도 안하면 나 진짜 싹수 노란 거잖아?

욱 : 그래, 그래라. 네 맘대로 해

백 :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러니까 도착하면 나 깨워줘요

욱 : 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백현은 타이밍 좋게 바로 복학할 수 있었고, 주변의 수근 거림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열심히 학교를 다녔어. 그리고 졸업식 날이 욱이 백현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지. 백현은 제가 가지고 있는 별로 남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 그 모습에 욱은 모전자전이라며 혀를 찾지. 그래도 이나여사(백현의 어머니)는 우편이라도 보냈는데 애는 그것도 없다며 투덜거리는 것도 빼놓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욱이 백현을 다시 본 건 6년 후 한 자선 파티장이였어. 백현은 그 파티를 개최한 주최자이자 주최자의 배우자로 참석해있었지.


백 :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마치 엊그제 봤던 사람마냥 웃으며 인사하는 백현에 욱은 그저 혀를 찾어. 암만 봐도 애가 이나여사보다 한 술 더 뜨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욱 : 우리 마지막으로 본 게 6년 전 인건 기억하지?

백 : 물론이죠. 내가 바본가? 그것도 모르게?


이곳저곳에 다정다감하게 눈인사를 해주면서도 백현은 욱에게 톡톡 쏘며 말했어


욱 : 네가 나 부른 거지? 나는 이쪽에는 아는 사람 없어 너 말고는

백 : 물론이죠. 곧 내 수석변호사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욱 : 누가 니 변호사야

백 : 누구긴 누구야? 아저씨지. 아, 걱정 마요. 나는 우리 이나여사님처럼 입으로 수임료 퉁치고 그런 짓은 안할 테니까


짓궂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백현에 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따라 웃었어


욱 : 그런 말하기 전에 네가 6년 전에 우리 집에서 머물 때 너한테 들어간 돈이나 갚지?

백 : 에이, 여태껏 내가 아저씨 밀어준 것 만해도 그건 갚고도 남았네요


그 말에 욱은 무언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


욱 : 설마 그게

백 : 딩동댕. 당근 나였죠. 나 말고 아저씨 도와줄 사람이 또 있긴 해요?


최근 3~4년 전부터 부쩍 규모가 큰 사건이나 거물들이 욱을 찾곤 했어. 처음엔 우연이겠거니, 제가 쌓아온 게 빛을 받나보다 했지만 자세히 알아보니 누군가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거였어. 그걸로 지금 욱은 로펌 내 간판 변호사가 되어 있었지. 그런데 그 도움을 준 사람이 앞에 나타난 거야. 욱이 어이가 없어 순간 애를 한 대 때릴까 고민도 해봤어. 너무 어이가 없어 차마 손 들 힘도 없었지만 말이야.


욱 : 그래, 그건 네가 도운 거라 치자. 그런데 어떻게? 네가 그때 가지고 있던 재산으로는 이 정도 규모의 기업체를 만드는 건 어림도 없었어. 도대체 뭘 어쩐 거야


욱이 와있는 자선파티는 티롤렛이라는 기업에서 주최한 파티였지. 그런데 이 티롤렛이라는 기업은 그 탄생이 꽤나 재밌는 기업이었어. 일단 처음에는 군수산업체의 핵심 하청 업체였던 티렛과 각종 금속들의 가공을 주로 맡는 롤린이라는 두 개의 개별 기업이었지. 접점이라고 해봤자 티렛 쪽에서 담당하는 군수품의 중요 부품에 롤린 쪽에서 특허를 가지고 있는 기술로만 가공이 가능한 금속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둘 다 그리 큰 접점 없이 원만한 사이였지 그게 변한 건 롤린쪽의 오너가 급격한 건강 악화로 쓰러지면서 그의 비서이자 배우자였던 남자가 임시오너로 취임하면서 부터였어.

이 남자는 단순 금속 가공을 넘어서 광산부터 손을 대더니 기술 쪽도 푸쉬를 해서 특허를 늘렸지. 그리고 예전부터 시도되던 보석이나 공산품에 들어가는 금속 가공 쪽으로 사업 폭을 넓히는데 성공했어. 사실 모든 건 전대 오너 때부터 차근차근 실행되어오던 일이었지만, 성공시킨 건 그라는 걸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 그 결과 오너가 죽고 자식이 없어 오너의 모든 주식을 상속받은 임시오너는 취임에 성공했지. 그는 그 기세를 몰아 티렛 쪽과의 제휴에도 성공하더니 티렛쪽 오너가 바뀐 후에는 완전히 두 회사를 합병해버렸어. 한 회사 안에 아직 두 회사가 모두 그대로 남아있는 형식이긴 했지만 예상외의 결합이었던지라 모두의 관심을 한 번에 모은 건 당연한 일이었어.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티롤렛의 두 오너가 결혼소식을 알렸을 때 놀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어. 놀라봤자 상당히 어려보이는 전롤린의 오너가 이번이 세 번째 결혼이었다는 것 정도? 그렇게 경영을 안정시킨 회사는 최근 클린에너지다 뭐다해서 사업을 다방면으로 확장시키고 있었지 그리고 그 핵심에는 전롤린 오너가 있었어.

바로 백현 말이야


백 : 글쎄요. 아저씨 생각에는 내가 뭘 했을 것 같아요?

욱 : 야, 너 설마


백현은 비밀이라는 듯 입술위로 손가락을 세로로 길게 늘어트렸어


백 : 나 별거 안했어요. 한 결혼만 세 번했지. 롤린 오너랑 한번, 사업 확장 시킬 때 한 번, 저기 저 티렛 오너랑 한 번


백현이 멀리서 백현을 보고 웃는 티롤릿의 공동오너이자 백현의 배우자에게 손 키스를 해줬어


백 : 아저씨는 아직 결혼 안했던데 설마 애인도 없어요?

욱 : 너네 모자 같은 사람만날까 무서워 몸 사리는 중이다


욱이 대놓고 툴툴거리다 기어코 백현에게 한 대 맞았어.


백 : 내가 뭐요 나 별 거 안 했어요

욱 : 이나여사께서도 그 말을 하며 술에 약 타고, 흉기에서 지문을 지웠지

백 : 말 한 번 살벌하게 하네. 난 엄마처럼 약 안 쓰거든요? 내가 매력이 넘쳐 주위의 사람이 넘치는 걸 어떻게 해요

욱 : 아, 네, 네. 그럼 배우자 분들 처리도 그 매력으로 다른 사람 꼬셔서 했냐?

백 : 미쳤어요? 그런 건 스스로 해야죠. 요즘은 영 믿을 사람이 없어서.

욱 : 아이고, 대단하시네요

백 : 아, 진짜 별거 안했다니까? 첫 번째 남편은 지병이 악화된 거였고, 두 번째 남편은 사고였어요

욱 : 그리고 네가 그 지병을 악화시키고, 사고를 조장했고?


백현은 그저 입술을 쭉 내밀고 손에 들려있던 샴페인만 마셨지


욱 :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회사를 차지하고서는 왜 앞에 나서질 않는 거야?


백현은 대외적으로 자신의 신상을 철저히 보호했어. 욱조차 그의 행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이번 자선파티도 굉장히 소수의 사람만이 참석 할 수 있었어.


백 : 내가 누군지 몰라야, 내가 접근했을 때 의심을 안 하죠

욱 : 그 말은 아직도 배우자를 바꿀 계획이 있으시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백 :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겠죠?

욱 : 내가 거절하면?

백 : 다른 사람 찾아야줘 뭐


욱은 빠르게 포기하는 백현이 의심스러워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어


백 : 물론 그 전에 아저씨는 내가 해준 거 다 토해내시고

욱 : 야, 그건 네가 6년 전에

백 : 원금과 이자는 남겨둘 테니까 걱정 마요

욱 : 네가 이나여사보다 더 악랄한 거 알아?

백 : 에이, 설마


백현이 여유롭게 콧방귀를 꼈지만 욱은 진심이라는 듯 정색을 했어


욱 : 진짜거든? 내가 그때 이나여사를 돕지 말았어야했는데

백 : 그래서, 내 도움 토해내겠다고요?

욱 : 미쳤냐, 애가 누굴 망치려고

백 : 그럼 도와주는 거죠?

욱 : 애초에 선택권 있었던 것처럼 굴지 마라


욱이 핑거 푸드를 집어먹으며 우물거렸어


욱 : 그래서 내가 뭘 도우면 되는데?


백현이 그 알에 손짓으로 제 주변에 서있던 타이트한 검은 드레스의 여자를 불렀어


백 : 마사, 내가 변호사님이랑 중요한 애기를 하려고 하는데 어때, 괜찮겠어?


그 물음에 마사가 어떤 작은 컨트롤러를 꺼내 무언가를 설정했지


마 : 물론입니다 대표님


마사가 다시 멀어지는걸 보고 욱이 백현을 힐끗 봤어


현 : 별거 아니에요. 주변에 녹음기나 도청기 같은 거 있으면 곤란하니까 그거 정리 부탁한 거에요

욱 : 아이고, 철두철미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욱은 무언가 긴장되는 걸 막을 수 없었지


백 : 이제 슬슬 지금 남편이랑 정리를 할 생각이에요

욱 : 나 이혼전문변호사 아닌 거 알고 있지?


욱이 농담하듯 말했어


백 : 저 남자랑 이혼 해줄 생각은 나도 없어요. 저 사람은 죽을 때까지 법적으로 내 배우자여야해요


백현은 웃고 있었지만 전혀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았어


욱 : 정확히 내가 해줘야하는 게 뭐야


욱도 표정을 가다듬고 물었지


백 : 아저씨가 해줄 일은 우리 엄마 때랑 비슷해요. 내가 저 남자를 정리하면 아저씨가 나를 법적으로 보호해줌과 동시에 모든 유산이 나에게 안전히 상속되도록 돕는거에요. 일단 저 남자 지금 자식은 없고, 유언장은 이제 곧 다시 쓰는 날이 돌아와요

욱 : 그때 손을 좀 써야겠군

백 : 네. 거기까지 아저씨가 맡아줘요 앞에 둘은 내가 알아서 했는데 이번엔


백현이 어깨를 으쓱였어


백 : 워낙에 알려지기도 했고 영향력도 커서 내 선에서 손쓰기가 힘들어서요. 어때요? 이나 여사때보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대충 하는 일은 비슷한데 할 수 있겠어요?

욱 : 거지 안 되려면 해야지 별수있냐


욱이 옆에 놓인 잔을 단숨에 비웠어


욱 : 계획 정리되면 연락 줘

백 : 고마워요 아저씨

욱 : 저는 그저 의뢰인의 의뢰를 받는 거 뿐입니다


욱은 그 말만을 남기고 파티장을 떠났고, 백현은 마사에게 눈짓을 하고 제 남편에게 웃어주었어.

그렇게 욱과 재회하고 함께 해온지도 6년이 지났어. 그 사이 백현은 더욱 더 큰 기업의 오너가 되었고, 이제는 유명세를 타는 걸 막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인지 최근 1~2년 동안은 결혼도 사별도 없이 일에만 열중했어. 7번째 배우자를 실종 처리해버려서 그런 것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곧 백현은 다시 새로운 남편을 들일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어. 그리고 포효했지


욱 : 꼴 좋다. 그러 길래 내가 뭐랬어, 정정당당히 하랬지?

백 : 정정당당? 아저씨는 이게 정정당당 가지고 될 일 같아요?


백현네 회사는 최근 꽤나 큰 공사를 입찰받기 위해 뛰어들었는데 완전 물 먹기 직전이었어. 그쪽 큰 손이라고 불리는 양반이 갑자기 끼어들어서는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신생기업에게 일이 떨어지게 생겼지. 그런데 소문에의 하자면 그 기업 오너가 큰 손의 새로운 아내라네


욱 : 자업자득이라니까?

백 : 아, 쫌!!!


그 꼴에 욱은 대놓고 비웃으며 낄낄 거렸고, 백현은 열이 받아도 제대로 받았지. 사실 뭐 백현네 입장에서는 그 공사 못 따와도 큰 문제는 없었어. 그런데 문제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거야. 그래서 백현이 지금 욱의 사무실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거였지


욱 : 이제 그만 진정해. 이미 결정 된걸 뭐 어쩌겠어

백 : 아직 결정 안됐어요


그냥 두면 뒤로 넘어갈 기세라 이제 그만 놀리고 진정시키려 찬물 한 잔 따라주려던 욱이 갑자기 제자리에 서서 꿈을 꾸듯 멍한 표정을 짓는 백현에 무언가 불안감이 엄습하는 걸 피할 수가 없었지


욱 : 뭐?

백 : 아직 안 끝났다구요. 최종 결정일까지는 몇 달 남았어요. 그 전에 큰 손을 뺐어오면 되는 거잖아

욱 : 야, 너 무슨 막장드라마 찍냐?

백 : 뭐 어때요 어차피 여태껏 우리가 한 일에 비하면 세 발의 핀데. 큰 손을 빼돌린 다음에 잠잠해지면

욱 : 처리하시겠다?


백현은 왜 이제야 제가 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환한 표정으로 웃으며 제자리에 앉아 찬물을 시원하게 들이마셨어


욱 : 내 생각에 그 남자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너 만만히 보다 진짜 큰 코 다쳐


이미 작전을 짜는데 집중해 욱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던 백현은 나중에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었어. 왜냐하면 욱의 말대로 그 남자, 그러니까 망할 헨릭 회장은 백현이 뭘 하든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옆에서 꼬시다는 듯 웃는 회장의 아내 셀레나 덕분에 백현은 속이 꼬여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백 : 진짜 눈은 더럽게 높네


그러던 중 충성스러운 비서 마사가 회장이 여태껏 만나온 사람들의 특징을 분석한 결과를 받아본 백현은 아예 대놓고 대자로 드러누워 버렸어


욱 : 야, 너는 키부터 안 된다. 여기 남자는 180이상만 거들떠 본다는데?


그런 백현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실실 웃으며 백현의 복장을 툭툭 건드리던 욱은 결국 마사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야했어. 욱을 그렇게 보낸 백현은 그 후로도 한참분이 풀리지 않아 허공에 발길질을 하다가 축 쳐져 벼루 먹은 노새 꼴로 최근 머물고 있는 호텔로 갈수 밖에 없었지. 모든 게 짜증나 정장 차림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워 시체놀이를 하던 백현은 차임벨 소리에 잠깐 놀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지. 이곳은 욱과 마사밖에 모르는데 둘 모두 올 시간이 아니었거든 온다고 해서 얌전히 벨 누르고 기다릴 사람들도 아니었고. 그래서 무시하고 있으려는데 밖의 누군가는 아주 끈질기게 눌러댔어. 그에 짜증과 분노에 가득 차 문을 열자 밖에는 어떤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는데 문이 갑자기 열려 놀랐는지 펄쩍 뛰어오르는데 그에 백현이 더 놀랄 지경이었지.


백 : 누구시죠?

열 : 저....연락받고 왔는데요...필요하시다고 하셔서...


남자는 큰 키와 넓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어찌할 줄을 모르며 중얼거렸지. 그 모습을 인상을 쓰고 보던 백현은 곧 남자가 초짜 렌트보이라는 걸 깨달았어.


백 : 여기 아니에요 잘못 온 것 같네요

열 : 네? 정말요?

백 : 네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남자에 단호히 말을 하고 문을 닫으려던 백현은 무언가 번뜩 생각나 다시 문을 활짝 열었어. 그에 방황하던 남자가 고개를 휙 쳐들어 백현과 눈이 마주쳤지


백 : 이봐요

열 : 네?

백 : 키가 몇이에요?

열 : 네?

백 : 아니다, 아니다. 맨발로 180 무조건 넘죠?

열 : 네

남자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어

백 : 악기 연주 할 줄 아는 거 있어요?

열 : 기, 기타 조금

백 : 피아노는?

열 : 코드랑 그런 건 칠 줄 알,

백 : 외국어는 할 줄 아는 거 있어요? 영어말고

열 : 없는데....


질문 폭탄을 던지던 백현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쓰다가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마음을 굳혔는지 문을 완전히 닫고 나와 남자와 마주섰어


백 : 이름이 뭐에요?

열 : 열, 열입니다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보던 백현은 머리를 벅벅 긁다 한숨을 크게 쉬고 팔짱을 낀 채 열에게 가까이 오라 손짓했어.


백 : 돈 필요하죠?


열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


백 : 돈 벌게 해줄까요? 이런 일 평생해서는 만져보지도 못할 만큼 엄청나게 큰 돈


열의 눈이 커졌어,


열 : 어, 어떻게요?

백 :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요. 어때요, 해볼래요? 이상한데 팔아넘기진 않을 테니까 걱정 말고


열이 백현을 빤히 쳐다봤어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지. 신문에서 본 것도 같았어. 그런 사람이라면 최소한 납치해서 어디다 장기같은걸 팔아먹고 가져다 버리진 않겠지. 이미 밑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는 찬열은 더 이상 잃을게 없었어.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지.


백 : 좋아요 그럼 나랑 결혼먼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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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백썰인데 열이가 별로 나오질 않는 것 같은 이 느낌적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