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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51031 : 꿀벌 : 고전물 조각

고전물 조각

W. 꿀벌





건륭제의 재위 기간은 고작 25년이었으나 그동안 세운 업적은 후세에 길이 남았다.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없게 하기 위해 관리들을 통하여 의무적으로 백성들에게 글을 배우게 하였고, 그로 인하여 건륭제 재위 기간 동안의 문맹률은 현저히 낮았다. 또한, 건륭제는 가뭄에 대비하여 수도 및 토지 개간 등을 시행하였는데 이로 인해 백성들은 한 해 동안 먹을 곡식을 풍족하게 얻을 수 있었다. 그에 반하여 건륭제에 대한 평가가 야박한 까닭은 그의 은밀했던 성생활에 있었다. 야사에 의한 기록에는 건륭제는 정비인 소혜왕후를 통하여 1명의 왕자와 후궁 정씨를 통하여 1명의 왕자와 1명의 공주를 슬하에 두었으나 모두 건륭제 재위 후 5년 이전에 출생한 왕자들과 공주로, 이후의 재위기간 동안에는 후사를 보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건륭제가 남색을 즐겨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좌도독과의 관계에 대한 후일담이 전해진다. 


-재미로 읽는 후한사 : 상반된 두 가지 평가, 건륭제편-




백현이 소궁으로 밖으로 나온 것은 딱 8년 만이었다. 하필이면 8년 만에 보는 소궁 밖의 풍경이 깊은 밤중인 것을 안타까워하며 백현은 내시부 상선의 뒤를 따랐다. 자신을 굳이 건청궁으로 부르는 황제의 뜻이 좋은 이유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표정의 상선은 속내를 읽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현은 상선이 어려웠다. 상선은 지극히 황제의 사람이었다. 황제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이었다. 


건청궁 앞에 다다르자 백현은 제 몸을 짓누르는 죽음의 기운에 몸을 떨었다. 궁인들은 모두 표정을 감추고 있으나 단단히 긴장한 상태였다. 상선의 인도에 백현이 황제의 침전 안으로 들었다. 스르륵, 방문이 닫히며 외부와 단절시켰다. 백현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태였지만 방 안은 어둑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가까이 오십시오.”


황제에게 가까이 간 상선이 하는 말에 백현은 발소리를 죽이고 황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황제는 가만히 이부자리에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얼굴에는 병색이 짙었다. 들숨 날숨조차 멈춰버린 그 모습에 백현은 깊이 침음했다. 경대를 통해 보던 자신과 같은 얼굴이 누워있었다. 마치 자신이 누워있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승하하셨습니다.”


상선의 어조에는 침통함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백현은 상선이 침통해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은 그다지 슬프지 않아서 자신이 이상한 것인가 생각했다. 단지, 자신과 같은 얼굴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있으니 소름이 돋았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세자마마가 미령하시어 곤위에 오르실 수가 없습니다.”

“하여, 희원군 마마께서 황제가 되어주셔야겠습니다.”

“허수아비 황제 말입니까.”


백현의 물음에 상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행동이 암묵적인 긍정의 뜻임을 백현은 잘 알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 제의를 저버리면 앞날이 어떻게 될 지도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소궁에 유폐를 시켰던 이유가 이 탓일까. 


백현의 머릿속에 화마에 잠겼던 8년 전의 그 날이 떠올랐다. 


그 날, 어렸던 백현은 자신의 죽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같은 모후에게서 태어난 형에게서 미움을 받고 아비의 걱정거리가 되고 난 이후부터 백현은 한 시도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보이는 대로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을 뿐인데, 스승은 자신을 천재라고 칭했고, 대소신료들은 자신을 황실의 홍복이라 하였다. 


그 순간부터 자신은 왕위를 위협하는 동생이 되었다. 대소신료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뉘었다. 매일 밤, 천장에는 낯선 자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음식에는 각종 독이 섞여 들어왔다. 형과 아우를 비교하는 이목과 반목들이 끊이질 않았다. 아비는 쇠약해지고 두 형제가 자랄수록 두 형제에게 닥치는 위협의 강도는 높아졌다. 그리고 아비가 몸져눕게 되자 형에게는 거사가 아우에게는 비극이 닥쳤다. 


백현이 까무룩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이미 백현의 궁이 불에 잠기었을 때였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열기에 백현은 이불로 얼굴을 틀어막았다. 사위는 고요했다. 궁 안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화마를 피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백현은 마음을 바꾸어 그대로 이부자리에 몸을 뉘였다. 차라리 이대로 목숨이 끊어진다면 모두가 편해지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백현은 서서히 몸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우당탕탕. 궁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마!”


자신을 찾는 애탄 외침이 들렸다. 이 거센 불길을 뚫고 자신을 찾기 위해 누군가가 찾으러 와주었다는 사실에 백현은 역설적이게도 안심했다. 자신을 찾는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려고 크게 숨을 들이키자 뜨거운 열기와 뿌연 연기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콜록콜록. 백현은 기침과 함께 연기를 토해냈다. 우지끈. 다시 한 번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사내가 방문을 뚫고 침소로 뛰어들었다.


“희원군 마마!”


백현을 부르며 나타난 사내가 달려와 백현을 안았다. 사내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마마, 정신 차려보십시오.”

“뉘시오?”

“호분중랑장입니다, 마마. 정신 차리십시오.”


그리 말하며, 사내는 백현을 제 등에 업었다. 화기로 인해 숨길이 화상을 입은 것인지 백현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콜록콜록. 고통에 찬 백현의 기침소리에 작은 몸이 크게 들썩였다. 절대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사내는 그리 말하며 백현을 재빨리 업었다. 그리고 백현의 몸 위에 물로 젖은 제 옷을 덮었다. 물의 찬 기운 때문인지 숨을 쉬는 것이 한결 편해졌다. 백현을 업은 사내는 다시 불길을 가르며 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도 혹여 백현이 정신이라도 잃을까 사내는 계속해서 백현에게 말을 걸었다. 마마, 소인이 마마를 구하러 왔습니다. 그러니 절대 정신을 잃으시면 안 됩니다. 마음을 굳건히 다지시고… 마마. 자꾸만 저를 부르는 소리에 백현은 까무룩 몰려오는 수마를 힘겹게 내쫓았다. 


탁탁탁. 사내의 발걸음 뒤로 우지끈 하며 나무들이 부러져 쏟아지는 소리들이 들렸다. 사내의 등에 얼굴을 기대어 눈을 감고 있으려니 사내의 거친 숨소리와 빠른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보답하듯 백현의 심장소리도 쿵쿵 뛰었다. 겨우 사내가 백현의 침전을 빠져나오자 그 뒤로 침전이 불에 타 쓰러졌다. 밖에서 발을 동동 거리며 백현을 기다렸던 유모는 사내가 백현을 업고 침전을 빠져나오자마자 백현에게로 달려갔다. 


“마마! 괜찮으시옵니까?”

“윤 상궁…, 나는 괜찮… 콜록.”


화기(火氣)를 잔뜩 들이마신 백현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백현의 상태를 확인하던 유모는 백현이 기침을 터뜨리자마자 태의를 찾았고, 대기하고 있던 태의는 바로 달려와 백현의 몸을 확인했다. 정신이 없어 어지러운 와중에도 백현은 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사내를 느꼈다. 


호분중랑장. 황궁을 지키는 무관. 자신을 호분중랑장이라 칭찬 사내는 백현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백현은, 저마저도 저버리려 했던 목숨을 구해준 이의 얼굴이 궁금했다. 


“마마를 얼른 소궁(小宮; 백현의 침전에서 가까운 작은 궁)으로 뫼시게.”


윤 상궁의 말에 백현의 손을 잡고 있던 사내는 망설임 없이 다시 백현을 업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본 태의가 “자네도 치료를 받아야겠구만.” 이라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내는 백현을 업고 윤 상궁의 뒤를 따랐다. 겨우 눈을 떠 사내의 모습을 보려 했지만, 백현의 눈에 든 것은 불에 그을린 사내의 머리카락뿐이었다. 백현은 그런 사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그리고 사내의 귀 가까이에 속삭였다. 


“그거 알고 있는가. 나는 그대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었다네.”

“…….”

“근데 자네가 날 살렸어. 어쩌자고….”


어쩌자고…. 백현의 속삭임에 사내가 발을 멈추었다. 앞서 나가던 윤 상궁이 사내의 발을 재촉하였지만, 사내의 발은 움직일 줄 몰랐다. 마치 발이 붙어버린 망부석처럼, 그리고 백현은 제 목에 감고 있던 작은 호박으로 만든 목걸이를 끊어 사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사내의 등에 업힌 채 눈을 감았다. 수마를 이겨내기엔 백현의 몸은 너무 고단했다. 


그대로 쓰러진 백현이 눈을 뜬 것은 사흘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백현이 쓰러진 사흘 동안 백현에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가장 첫 번째로 백현의 아비인 효무제(孝武帝)가 승하하였다. 기력이 쇠한 상태였으나 갑작스럽게 승하한 터라 궁 안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특히, 그 뒤를 이어 백현의 형인 건륭제가 재위에 올라 소문은 더욱 크기를 부풀렸다. 백현이 불에 타 죽을 뻔 하고, 아비인 효무제가 승하하니, 이 모든 것이 건륭제가 황제가 되기 위해 꾸민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길로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건륭제가 반(反)황제파 인물들을 숙청하면서 소문들은 쉬쉬 하며 수그러들었다. 


건륭제는 반 황제파 인물들, 즉 백현을 황제로 옹립하려던 인물들의 숙청을 시작했다. 개중에는 제 작은 외숙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머니인 소혜황후가 눈물로 건륭제의 앞에서 빌었지만, 건륭제는 제 손으로 작은 외숙부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제 자리를 위협했던 동생인 백현의 목도 베고자 했다. 허나 소혜황후가 곡기를 끊으며 명주 천으로 제 목을 두르며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하자 한 발 무를 수밖에 없었다. 효(孝)를 중시하는 후한에서 어미를 죽음에 내몰은 왕으로 기록되는 것은 막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머니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한 백현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소궁에 유폐될 수밖에 없었다. 궁의 가장 음침한 곳에 폐서인이 된 자들이 머문다는 소궁에서 백현은 저의 유모 한 사람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죽을 때까지 이곳을 못 벗어날 것이다. 


언젠가 황제가 소궁까지 행차하여 백현에게 던진 말이었다. 죽어서만이 이곳을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백현은 모든 희망을 버렸다. 담장 너머의 궁 밖의 풍경은 백현에게는 그저 상상뿐이었다. 죽은 듯 고요하게 지내는 백현 탓에 하나 둘 백현의 존재를 잊는 사람들은 늘어갔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차 뜸해져 결국은 윤 상궁만이 식자재를 얻기 위해 궁을 오가게 되었다. 


그리고 8년째 되는 어느 날 밤, 백현은 소궁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죽어서야 넘을 수 있다는 문턱을, 황제가 먼저 죽음으로써 넘을 수 있었다. 




**



상참(常參)에 참여하기 위해 편전으로 향하기 전, 내시부 상선은 백현에게 많은 것을 당부했다. 오랫동안 소궁에 유폐되어 신료들을 제대로 모르는 백현을 위해 신료들의 직책과 이름을 적은 종이를 외우게 하며 옥체가 미령하다는 핑계로 말을 아끼도록 했다.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백현은 건륭제와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건륭제가 백현임을 알지 못하였다. 백현이 편전의 어좌에 오르자 편전의 전정에 정렬해 있던 신료들이 백현을 향해 두 번 절을 올렸다. 


“부(仆), 흥(興), 부(仆), 흥(興), 평신(平身)!”


외침에 따라 몸을 일으킨 신료들 사이로 백현이 자리에 앉았다. 백현이 자리에 앉자 상참이 시작되었다. 고위 관료들만 모인 상참의 현안(懸案)은 훈족의 침입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훈족을 몰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인 가운데 백현은 조용히 신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제 나라 땅이 없는 훈족은 춘궁기가 되면 늘 후한의 땅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일삼곤 했다. 조용히 듣고만 있는 백현의 눈치를 살피며 신료중 하나가 말을 꺼냈다. 


“좌도독을 보내어 해주 일대를 평정케 하옵소서.”

“마침 좌도독이 등청해 있사오니 그를 부름이 마땅하온 줄 아룁니다.”


신료들의 외침에 백현이 내시부 상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許)한다.”라며 외쳤다. 백현의 말에 내관이 좌도독을 데려오기 위해 편전을 나서고 신료들은 다른 사안에 대해 백현에게 말했다.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백현이 흐지부지하며 넘기는 사이 내관이 좌도독이 들었다며 백현에게 고했다. 들라는 백현의 답에 편전으로 들어선 미장부(美丈夫) 하나가 백현을 향해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자신의 어릴 적 기억 속에 있던 나이든 장군을 생각했던 백현은 제 앞의 미장부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가 흐음, 하고 작게 기침을 하는 상선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좌도독 박 찬열, 폐하의 부름에 들었나이다.”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을꼬.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백현은 모든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평신하라며 외쳤다. 백현의 말에 찬열이 백현의 앞에 예를 취하며 앉았다. 


“그대가… 해주 일대에 든 훈족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폐하의 명이라면 받잡겠습니다.”


찬열의 말에 백현이 상선을 바라보았다. 상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백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에게 군 2만과 군량미 3천 석을 내리시지요. 상선의 말에 백현이 상선의 말을 고대로 읊었다. 백현의 말에 찬열이 제가 찬 검을 풀어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백현을 향해 다시 절을 올렸다. 폐하의 땅에서 훈족을 몰아내겠다는 찬열의 외침이 편전 안에 퍼졌다. 


“물러가도 좋다.”


백현이 다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찬열은 그대로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편전을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백현의 눈이 다시 커졌다. 찬열의 검에 익숙한 호박 모양의 장식이 달려있었다. 저 것을 저 자가 어찌? 달려가 그를 잡고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백현에게는 그럴 힘도 상황도 주어지지 않았다. 





+)

어정쩡한 부분에서 끊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