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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60521 : 앨리스 : 안아줘 上

 

 

* 정준일의 안아줘.를 듣고 쓴 글 입니다. 들으시면서 읽으셔도 좋을거 같아요.

* 上을 달았으니 下편도 있을 예정입니다.

* 긴 편이 아니라 짧게 읽으실 수 있는 간편한 글 입니다.

 

 

 

 

 

이제는 해 줄 수 없는데, 지금 너는 그 말을 하네. 안아줘. 그리고 안아줘.

 

 

 

 

 

W. Alice

 

 

 

 

 

헤어지자. 차갑게 내뱉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나를 붙잡는 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카페 문을 열었다. 그래 잘한 거야, 잘한 거야 백현아. 더 이상 그 아이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너잖아.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그 아이를 아프게 하지 말자. 이번에 네가 한 말이 그 아이를 아프게 한다고 해도 이제부터 그 아이는 아프지 않아도 될 거야.

 

 

 

위암 4, 즉 말기. 23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다가온 암이라는 무서운 존재는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숨기고 살금살금 조금씩 나를 침식시켰다. 두려움이라는 감정보다는 너와의 이별이 더 무서웠고, 너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말기 판정, 결국 시한부 판정이라는 것은 이별을 말할 수 있는 핑계거리에 불과했고, 더 이상 널 아프게 하기 싫었기에. 나는 이별을 택했다.

 

 

 

20, 막 졸업해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땄을 때 처음 널 만났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그리고 동기. 처음 널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좋았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왜냐면 넌 너무나 빛나던 사람이었으니. 고등학교 때 잔뜩 찐 살을 겨우 빼고 나서야 보이는 내 주위의 공백을 알아챈 사람은 너였다. 처음 말을 걸어줬을 때, 다정하게 웃으면서 너가 백현이지? 안녕 나는 박찬열이라고 해. 너랑 같은 학번이고, 잘 부탁해 백현아.’

 

 

 

네가 처음 다가왔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인기인과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 보다는 그냥 내 곁에 누군가가 다가와 줬다는 그 사실이 나를 더 기쁘게 했다. 박찬열은, 너는 그런 아이었다. 착하고 착하고 그리고 착하고. 한 없이 착한 아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연애감정을 느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고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좋았다.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백은 내가 했다.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

 

 

 

 

찬녀라 찬녀라

 

응 백현아

 

이짜나아 내가 할 마리 이써어

 

백현아 너 술 마셨어?

 

으웅 조금 마셔따, 쪼금 아주 쪼오금

 

어디야 너?

 

? 지금 별님이 반짝반짝 거리고 이따

 

백현아, 너 근처에 누구 있어?

 

업따! 그니까 찬녀라 이짜나 내가 할 말이 이써

 

백현아!

 

응 나 배켜니야 그러니까 드러바아 이짜나 내가 조아하는 사람이 이써

 

.....

 

근데 그게 누군지 아라?

 

누군데?

 

, 비미리야!

 

.....

 

장나니야, 배켜니가 조아하는 사람은 으응 바로바로 찬녀리야 배켜니가 조아하는 차뇨리

 

 

 

무슨 생각이었을까. 취중진담이라고 못 보일 꼴 까지 보여주고 어찌저찌 집에 혼자 기어 들어가서 아침에 일어나자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지난 밤 만행에 부끄러워했었다. 내가 그 아이를 일주일 정도 피해 다니기도 했었고, 결국에는 붙잡혀서 눈앞에서 고백의 대답을 받았다.

 

 

나랑 사귀자. 백현아

 

 

 

행복했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건 그 아이와 사귄지 딱 360일 째, 남자끼리 무슨 일 년을 챙겨. 라고 말은 했지만 이벤트를 해 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순간 몰려오는 통증에 모든 게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고 내 다리는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까지, 박찬열한테는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말을 했다.

 

 

위암 말기입니다. 왜 병원에 오지 않으셨습니까. 오래라고 해 봤자 4개월 남짓입니다.

 

 

신은 없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정리해 나갔다. 부모님은 모두 작년에 사고로 돌아가셨고, 세상에 남은 건 나 혼자였기 때문에 하나하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깨끗이 빨아 고아원으로 보냈다. 쓰던 책은 모두 한 곳에 모아두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정리하지 못하는 건 역시 그와의 추억이 담긴 모든 것이었다. 내가 죽으면 같이 태워주길 바랬던 물건들만 몇 개 빼 놓고 마찬가지로 박스에 담아 포스트잇을 붙였다. 박찬열에게 보낼 것. 그냥, 네가 챙겨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별을 고했다. 잔인하게, 그리고 또 잔인하게. 변백현은 널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라고 말하면서.

 

 

 

 

*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아.

 

내 소중한 사람아.

 

하나 아쉽다고 말 할 수 있는건, 사귈 때 너를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는 것

 

티비에서 본 두 연인들의 이별 장면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이라 하면서 노래를 불러주더라

 

가사는 안아달라고 하는 발라드 곡이였어

 

여자는 그 노래를 듣고 울었다. 이제는 해 줄 수 없는데, 그 노래를 부름으로서 미안한 감정이 같이 생겼다고 했다?

 

이제는 해 줄 수 없는데. 라는 그 여자의 말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처럼 띵하고 울려왔어

 

나 같았거든

 

소중한 사람아. 너는 아프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며 너를 닮은 아이를 낳고, 나 같은 건 잊고서 그렇게, 그렇게 살아줘.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아.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아.

 

 

 

 

 

201689, 232756. 변백현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차갑게 울리는 심장의 고동의 멈춤을 나타내는 차가운 기계 소리.

죽음을 말하는 의사의 말. 그리고 영원한 어둠에서 돌아올 수 없는 나.  영원히 안녕. 내가 사랑한 사람아.